[현장] “어떤 일로 화가 납니까? 내가 바뀌면 화 날 일이 없습니다”

국민일보

[현장] “어떤 일로 화가 납니까? 내가 바뀌면 화 날 일이 없습니다”

1999년 시작해 올해 200회 맞은 다일공동체 영성수련

입력 2020-01-1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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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가운데 흰색 상의)가 지난 9일 경기도 가평 설곡산 영성수련원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가평=송지수 인턴기자

“언니가 휠체어 탄 아버지 앞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평생 엄격했지만 늙어 거동이 불편해진 아버지에게 딸 죽어가는 거 보라고요.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을까요. 이 일을 가슴에 묻어두고는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50대 여성 A씨)

“수능을 망쳤는데, 엄마가 그랬어요. 이 성적으로 어디 가서 뭘 하겠냐고. 넌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거라고. 외고 친구들이 대학에 가서도 실패한 너의 친구가 되어줄 것 같냐고.“(20대 여성 B씨)

마음속 깊이 간직해온 상처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9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산 다일공동체의 영성수련 나흘째 현장을 찾았다.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 목사가 1999년 4월 시작해 2020년인 올해 200회를 맞은 4박 5일의 영성수련 과정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 설악나들목에서 차로 30분쯤 더 구불구불한 길을 운전해 들어가야 하는 심산유곡에 스마트폰과 시계를 반납한 200기 수련생 70여명이 모여 있었다.

최 목사는 극단적 선택을 한 언니에게 상처받은 A씨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딸의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본 A씨의 부친은 그 충격으로 몸져누워 1년 후 숨졌다고 했다. 최 목사의 기도가 이어졌다.

“불쌍한 우리 자매님이 언니와 아버지를 정죄하고 판단하려는 마음을 거두게 해 주소서. 그 일 자체엔 화가 없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울러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 주변에 남겨진 가족들을 돌볼 수 있도록 함께해 주소서.”

최 목사는 입시 문제로 엄마에게 상처 입은 B씨에게 “화가 날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여성은 “아닙니다”고 답했다. 최 목사가 “그럼 무슨 일입니까”라고 되묻자 “엄마가 걱정해서 한 일입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이후 “그 일 속에 화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그 화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내가 만들었습니다”란 문답이 이어졌다.

남편의 불륜, 목사님의 폭언, 재혼 가정의 자녀 갈등 등 털어놓은 사연도 다양했다. 최 목사는 반나절 넘게 수련생들의 고백을 듣고 눈물과 통곡으로 상처를 끄집어낸 뒤 그 일의 본질을 묵상하도록 도왔다. 이어 ‘화’라는 감정은 나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 일 자체엔 화가 없으며 나아가 남을 정죄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했다. 고백과 문답, 설교와 기도가 눈물과 감동으로 어우러진 시간이었다. 최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화를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불순종하고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낸 게 화입니다. 죄악에 빠져 화를 저버리지 못하니까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말씀이 육신이 돼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죽이려는 사람들에게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 용서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제자들도 그걸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바뀌면 화가 날 일이 없습니다. 일체가 은혜이고 감사입니다. 아하”

서로 굳게 잡고 기도하는 수련생들의 손. 가평=송지수 인턴기자

다일공동체 영성수련은 1~3단계로 나뉜다. 지난 20년간 국내 설곡산 수련원은 물론 미주와 유럽에서도 열려 2만명 넘는 성도들이 다녀갔다. 200회를 맞이한 이날의 1단계는 ‘아름다운 세상찾기’다. 이를 이수해야 2단계 ‘작은 예수 살아가기’로 넘어간다. 이어 3단계인 ‘하나님과 동행하기’는 가톨릭 수녀였다가 최 목사의 사모가 된 김연수 영성수련원장이 함께한다. 영성을 되찾는 것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돌아보고 정성 들인 진지(식사)를 들며 마음과 몸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잠깐의 휴식 때 최 목사를 붙잡고 ‘아하’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최 목사는 “아멘 플러스 할렐루야”라고 답했다. 불신자와 냉담자 등 기독교 전례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기 위한 용어였다. 이날 영성수련에도 불교 신자들이 참석했다. 모두들 무언가를 느끼고 깨달을 때마다 ‘아하’를 되뇌었다.

서울 청량리역 밥퍼 사역 31년째인 최 목사는 “밥퍼보다 더 어려웠던 게 노숙인을 돌보는 다일천사병원이었고 그보다 더 힘든 게 영성수련이었다”며 “눈물 콧물 진액을 다 쏟아내 탈진하곤 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경축이 있기에 기독교 영성훈련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가평=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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