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아예 정치검찰 만들기로 작정했나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아예 정치검찰 만들기로 작정했나

입력 2020-01-13 04:01

칭찬받던 검찰 수사가 내 편 치니 편파·과잉·늑장수사 돼
인사에 따라 정권 상대의 수사 강도·결론 달라지면 그게 정치검찰의 본질 아닌가
‘명백한 불의’로 이어질 인사는 다급한 여권의 총선용 검찰 만들기다


미국의 법은 사법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를 규정하고 있다. 거짓 진술이나 허위자료 제출 등으로 수사·재판 절차를 방해하는 행위가 대상이다. 처벌 범위가 꽤 넓어 사법제도 집행을 저해하는 행위는 다 포함된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탄핵안의 주요 이유 중 하나도 사법방해였다.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의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 조사에서 로버트 뮬러 특검은 트럼프의 사법방해 정황이 포착됐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방수사국(FBI) 국장 출신으로 완벽주의자 법률가인 뮬러는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 게이트를 수사 중이던 당시 제임스 코미 FBI국장에 대한 수사 종결 회유 시도, 코미 국장 경질, 뮬러 특검 경질 시도, 전 법무부 장관을 통한 특검 공격 지시 등 10가지 사법방해 의혹을 적시했다고 미 언론은 보도했다. 언론은 법무부 규정에 따라 현직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유죄 결론이 나올 수 있도록 최대한 자세한 증거를 남기고 공을 의회로 넘겼다는 평가를 주로 했다. 러시아 스캔들이 워싱턴 정치판에서, 올가을 대선 과정에서 또다시 불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공식 수사기록이 세세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람들을 죄다 갈았다. 누구는 대학살이라 하고, 누구는 검찰 개혁의 과정이라고 한다. 추 장관은 “검찰은 편파수사, 과잉수사, 늑장수사 등 부적절한 관행을 개선하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검찰권을 행사해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진행 중인 중요사건의 수사·공판의 연속성에 차질이 없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일선 검사장들에게 중요 사건은 직접 책임진다는 자세로 지휘·감독하라고 당부했다.

검찰이 이렇게까지 몰리는 건 자업자득이다. 편파·과잉·늑장수사로 인해 권력의 사냥개 소리를 자주 들을 정도로 전비(前非)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검찰 개혁이란 국민적 여론이 높은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는 검찰이 정권에 떼로 덤벼들었다. 지금 그렇지 못하는 것은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검찰 개혁을 위해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게 용납될 수 있는가. 그로 인해 더 큰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는가. 적폐청산한다면서 신(新)적폐가 강고하게 쌓이는 건 아닌가.

문제는 지금부터가 더 크다. 문재인 정권 들어 조국·유재수 감찰 무마·울산시장 선거 개입 등의 의혹은 정권을 상대로 한 3대 수사였다. 정권은 상찬하던 윤석열 사단의 적폐수사가 대강 마무리 국면에 들어갈 때쯤 검찰은 3대 의혹에 손을 댄다. 똑같은 수사팀이, 똑같은 강도로 정권 핵심 인사들을 치려고 하니 그 상찬은 갑자기 편파·과잉 수사로 돌변한다.

이 지점에서 정권은 명백히 나쁜 길로 들어섰다. 검찰 개혁이란 명분이 퇴색했고, 3대 사건의 수사 또는 원활한 공소 유지를 방해하려는 의도를 내보였다. 그리고 ‘검찰 개혁=편파·과잉수사 중단’이란 기이한 프레임을 걸었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이건 ‘조국 임명=검찰 개혁’이란 무지하고 허무맹랑한 프레임과 똑같다. 외곽의 선동가들은 이 프레임으로 ‘닥치고 지지층’을 자극할 게다. 검찰 개혁과 3대 수사와는 아무 관련 없다. 검찰 개혁은 상당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나 검경 수사권 조정 같은 제도적 개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일이다.

조국 사건은 사법부로 넘어갔으므로 판단을 기다리면 된다. 수사가 진행 중인 나머지 두 사건은 고위 공직자 뇌물 등의 혐의를 권력층이 나서 은폐하려 했던 아주 질 나쁜 범죄 의혹이고, 선거·공천에 개입했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례 때 지금 여권이 얼마나 분노를 표출했는가.

인사에 따라 수사의 방향과 강도가 바뀌고, 결론이 달라진다면 명백한 수사 방해·지연 행위로 볼 수 있다. 이거야말로 여권이 그렇게 비판하던 과거의 정치검찰 아닌가. 내 편 수사 행위를 편파·과잉수사로 규정한 뒤, 황당한 ‘검찰 개혁=편파·과잉 수사 중단’ 프레임을 설정한 건 결국 3개월 앞으로 닥친 선거 때문일 것이다. 수사 결과가 나오고 공판이 시작될 무렵에 선거 운동은 절정에 이를 터이니 말이다. 총선용 정치검찰을 만들기 위한 인사라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하다.

언행과 소신 등 정치인으로서 추 장관의 개혁성을 높이 평가한다. 검찰 개혁도 몹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검찰 개혁의 호기를 친문들의 정치놀음 때문에 오히려 망가뜨린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명백한 불의(manifest injustice)’란 직접적이고 분명하며 관찰가능한 불공정을 뜻한다. “완벽한 정의가 무엇인지 찾기보다는 명백한 불의를 찾아 막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 1998년 노벨경제학상)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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