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검찰 개혁이 남긴 상처

국민일보

[신종수 칼럼] 검찰 개혁이 남긴 상처

입력 2020-01-15 04:01

우리사회 갈등과 분열 커지고 사사건건 정쟁화 경향
진영 내 다른 목소리 용인하지 않는 민주주의 퇴행 현상도
특정 가치 앞세워 다른 가치 희생하는 일 반복돼선 안돼


14일 신년 기자회견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전날 국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법이 통과됨으로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을 포함해 검찰 개혁 입법이 모두 마무리돼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고 싶어했지만 못한 개혁,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 1호인 검찰 개혁이 마침내 이뤄진 것이어서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검찰 개혁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저서 ‘운명이다’에서 이렇게 썼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문 대통령은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공저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우리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이 부분을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정권이 검찰을 정권의 목적에 맞춰 장악하려는 시도만 버린다면 검찰의 민주화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저절로 따라온다고 봤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의 한이자 문 대통령의 꿈, 찬성 여론이 우세한 검찰 개혁 입법이 매듭지어진 것을 여권이 자축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검찰 개혁이 남긴 상처는 너무 컸다. 문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이 점을 인정했다. 조국 사태에 대해 “조 전 장관 임명으로 인해 국민 간에 많은 갈등과 분열이 생겨났고, 그 갈등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점에 대해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 임명을 강행했던 것을 거듭 사과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이제는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까지 다 통과가 됐으니 조 전 장관을 좀 놓아주고, 앞으로 유무죄는 재판 결과에 맡기자. 그분을 지지하는 분이든 반대하는 분이든 그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이제 끝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제 조 전 장관을 잊자는 말이다. 조국 수호 집회 같은 것도 이제 그만하라는 당부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과 관련한 조 전 장관의 기여를 평가하며 그가 겪었던 고초로 인해 크게 마음의 빚을 졌다는 말도 했지만 인간적인 예우 차원일 뿐이다.

사실 조국 사태로 인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끔찍했다. 너무 심해 검찰 개혁이 도대체 뭐길래 국민을 이렇게 분열시키면서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권력이나 기득권 세력은 검찰 개혁에 관심이 있을지 몰라도 서민들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 말대로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웬만한 사안은 모두 정쟁화되는 분위기다. 진영 싸움이 심해지면서 진영 내의 다른 목소리는 억압되고 몰매를 맞는 현상도 나타났다. 민주화가 이뤄진 지 30년이 넘었는데 다시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퇴행 현상도 생겼다.

검찰 개혁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법이나 절차 등이 무시되곤 했다. 조국 일가의 불법이나 불공정 문제가 별 것 아닌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호하는 것을 보았다. 과거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 같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당시에는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도로교통법을 위반하기도 했다. 보도블록을 깨 경찰에게 던지는 등 공공기물을 파손하고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일도 예사였다. 많은 국민은 민주화라는 큰 가치를 위해 이런 불법들을 심정적으로 용인해주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다양한 의견과 입장들이 공존하는 다원화된 사회다. 검찰 개혁은 검찰 개혁이고, 조국 수사는 조국 수사다. 하지만 여권은 검찰 개혁을 앞세워 조국 일가의 불법과 불공정 문제를 가리거나 무시하려 했다. 검찰 개혁 명분을 앞세워 다른 가치를 무시하는 태도는 최근 검찰의 고위직 인사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사들을 임명 몇개월만에 좌천시킨 것도 그렇고 법무부 장관이 검찰 인사를 대통령에게 제청할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는 규정을 무시한 것도 논란이다. 이 규정은 노무현정부 때 검찰총장에게 인사권을 달라는 평검사들의 요구 등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문 대통령은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당시 검사들의 인사권 요구에 대해 “정치적 중립 혹은 독립을 표면적인 이유로 댔지만 본질은 검찰 개혁에 대한 거부였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검찰의 현 정권 수사도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절제되지 않은 검찰 권력을 대통령 인사권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영향을 미쳐 장관이 검찰총장 의견을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총장이 장관의 명을 거역했다는 주장은 조 전 장관 부인의 동양대 PC 반출이 증거인멸이 아니라 증거보존이라는 주장처럼 억지스럽다. 문 대통령이 6개월 전 권력에 굴하지 않고 수사를 한다는 이유로 임명한 검찰총장인데, 당정청이 모두 나서 항명 프레임을 씌워 찍어내려고 하는 것 또한 모순이다.

신종수 논설위원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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