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다윗의 정치학

국민일보

[오늘의 설교] 다윗의 정치학

사무엘상 24장 17~22절

입력 2020-01-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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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입니다. 할 수 없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받은 것보다 열 배라도 되돌려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이탈리아의 통일을 열망했던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에게 조언하기를 은혜와 관대함은 아주 조금씩 천천히 베풀고 복수는 잔인하고도 가혹하게 집행하라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의 통일 군주 다윗은 정반대의 선택을 합니다. 자신을 적대한 사울을 도리어 환대합니다. 사울의 말마따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보낼’(삼상 24:19)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다윗은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분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이지요. 산상수훈과 십자가에서 보복과 폭력이 아닌 용서와 평화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예수님의 길을 먼저 걸었던, 그래서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왜 다윗은 하늘이 준 천금 같은 기회를 두 번씩이나 포기했을까요. 그날 그 자리에서 사울을 죽이지 않으려고 했던 다윗의 심정을 헤아려보고 싶습니다. 시편의 그 많고 많은 저주시를 보건대, 다윗은 사울 몸 깊숙이 칼을 찔러 넣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힘을 준 손으로 칼을 그러쥐었을 것입니다. 아주 조금 소리 없이 칼을 빼다가 순간 멈칫했을 거예요. 이전보다 더 천천히 칼을 집어넣었을 겁니다.

아무도 몰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사울을 죽이지 못하는 것이 분통해서, 이후의 후환이 두려워서 울었을 겁니다. 하지만 후련하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미치광이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중하고, 미친 왕을 그 왕의 방식대로 앙갚음 하지 않은 자신이 자랑스러웠을 겁니다. 하나님도 너무 좋았나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다윗인 게지요.

어찌 보면 사울은 죽어 마땅합니다. 다윗은 무죄한 자요, 하나님과 왕에게 충성스럽기 이를 데 없는 유능한 부하 장수였고, 사랑스러운 딸의 남편, 사위입니다. 그런데도 하프를 켜는 다윗의 심장을 향해 창을 날린 사람이 사울입니다. 참람하게도 놉 땅의 제사장들을 무참히 학살한, 사악하기 그지없는 왕입니다. 나중에는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의 성패를 망령에게 묻는 망령된 왕입니다.

왜 다윗은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하나는 영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운 권위를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사람을 사람이 무너뜨리는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자신 또한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기에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피에 의한 복수가 정당화된다면, 그 역시 보복당하지 않겠습니까.

두 번째는 국가적 차원이 있습니다. 블레셋과의 오랜 전쟁은 비단 사울만의 과업은 아닙니다. 다윗의 전쟁이기도 합니다. 공의와 공평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누가 왕이 되든 변할 수 없는 천대의 사명입니다. 앞의 정권의 폐단을 적출해야 하지만, 국가라는 차원에서 보면 연속성이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세 번째는 정치적 필요 때문입니다. 선왕을 피로 제거하고 등극하는 순간, 그 자신도 칼에 노출되는 것은 필연입니다. 북이스라엘은 9개의 왕조가 명멸했고, 아들로 순탄하게 왕위가 계승된 것은 고작 2회에 불과합니다. 쿠데타에 의한 왕위 찬탈이 이어지고,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반면 남유다는 이따금 정변이 일어나 왕을 죽이기도 했지만, 주도 세력들은 모두 처벌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다윗 왕조는 오랜 시간 지속되었고,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영구히 견고히 서 있게 되었습니다.

복수의 메커니즘은 복수의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치명적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복수는 복수를 낳습니다. 우리의 정치가 탄핵과 탄핵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끌어내리겠다고 외치기를 중단하고, 나 자신과 한국교회가 복수의 화신이 되어 비참하게 죽고 만 사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복수의 악순환을 끊고 용서를 통한 통합과 화해의 길을 걷고 있는지를 돌아볼 때입니다.

김기현 부산 로고스교회 목사

◇김기현 목사는 부산 로고스교회를 섬기며 글쓰기 공동체인 로고스서원을 운영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성경 묵상법’을 비롯해 20여권을 저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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