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리지만 돈 안되는 외상센터… 결국 쌓인 갈등 터졌다

국민일보

사람 살리지만 돈 안되는 외상센터… 결국 쌓인 갈등 터졌다

이국종 파문, 의료원장 사퇴 촉구로 번진 내막

입력 2020-01-17 04:03 수정 2020-01-20 19:05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이 지난 2017년 북한군 귀순병사 수술을 마치고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2018년 인터뷰를 하는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 아주대의대 교수회는 16일 성명을 내고 유 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유 원장은 이날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국민일보DB

이국종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과 유희석 아주대의료원장 사이에 과거 벌어졌던 ‘욕설 대화’ 파문이 아주대 의대 교수들의 의료원장 사퇴 촉구 사태로까지 번졌다. 권역외상센터 지정 후 센터 운영과 간호인력·예산 분배, 닥터헬기 운용, 외상환자의 본원 병실 배정 문제 등을 놓고 이 센터장과 병원 간에 계속돼 온 불협화음이 지금과 같은 최악의 갈등 국면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공공의료 영역에서 맡아야 할 중증 외상환자 치료를 수익을 따질 수밖에 없는 일부 민간 의료기관에 위탁한 게 근본 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민간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가 중증외상센터 운영을 책임져라”는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

7년간 해묵은 갈등…사사건건 충돌


아주대병원은 2013년 보건복지부로부터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로 지정받은 후 3년 준비 끝에 2016년 100병상 규모의 권역외상센터를 열었다. 정부로부터 건립비 300억원, 연간 운영비 60여억원을 지원받았다. 아주대병원의 권역외상센터 지정과 건립에는 국내 최고 외상외과 전문의로 손꼽히는 이국종 교수의 역할이 컸다. 이 센터장은 2011년 소말리아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병사를 살려내 일약 스타 의사로 이름을 날렸다.

이 센터장은 자신의 실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외상센터 운영에 자신감과 남다른 애착을 보였고, 아주대 측은 전체적인 병원 살림을 앞세우면서 사사건건 충돌을 빚었다. 지난 13일 언론에 공개된 문제의 욕설 대화 녹취록도 이 와중에 흘러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녹취 파일에는 유 의료원장이 이 센터장에게 “때려치워 이 XX야. 꺼져” 등의 막말이 들어 있었다. 이 전화 대화는 2015~2016년쯤 외상센터와 병원 내 다른 진료과와 협진 문제를 놓고 이 센터장과 유 의료원장이 말다툼하는 과정에서 녹음된 것으로 파악됐다.

양측의 갈등은 외상센터 간호사 추가채용을 위한 정부 지원 예산을 놓고도 불거졌다. 이 센터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외상센터 간호인력 증원 예산(병상당 기준 초과 간호사 채용 시 1인당 4000만원 지원)을 병원이 전용했다고 폭로했다. 병원 관계자는 “국비 4000만원을 지원받아도 간호사 인건비가 6000만원 정도여서 2000만원 추가 부담을 해야 하는데, 이 센터장이 이 부분은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중증 외상환자의 본원 병실 지원을 두고도 갈등이 이어졌다. 외상센터 병상이 꽉 차면 본원 병실을 이용해야 하는데, 병원 측이 병실을 내주지 않아 이른바 ‘바이패스’(bypass·병실 부족으로 신규 환자를 받지 못해 다른 곳으로 이송하는 것) 발생이 늘었다는 게 이 센터장 주장이다. 실제 이곳의 바이패스 건수는 2017년 11건, 2018년 53건, 지난해 63건 발생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내부 공사로 전체적으로 병실이 부족했던 시기에 잠시 그랬던 것이고 본원 병상은 심장병, 뇌졸중 등 다른 환자도 받아야 해서 외상환자에게 무한정 내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은 지난해 8월 도입된 닥터헬기 운용에 따른 소음 발생 주민 민원을 놓고도 잦은 의견 충돌을 빚었다. 이 와중에 해외 해군순항훈련에 참가했다 15일 귀환한 이 센터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무슨 그 따위 거짓말을 하나. 병실은 언제나 내주지 않았다”며 병원을 강하게 비난해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이국종에 힘 실어준 의대 교수회

두 사람의 해묵은 갈등이 불거진 데 대해 동료 교수들이 이 센터장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양측 갈등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아주대의대 교수회는 16일 유 의료원장의 욕설 대화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이 센터장과 전체 교수에게 사과하고 즉각 의료원장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교수회는 병원 의료진 등에게 보낸 이메일 성명에서 “언어폭력은 사건 동기나 그 이면의 갈등과 상관없이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며 “직장 내 괴롭힘을 막을 의무가 있는 의료원의 최고경영자가 가해자라는 사실에 깊은 우려와 자괴감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유 의료원장은 이날 오전 베트남으로 출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 관계자는 “베트남 병원과 협력관계 체결 등 사전에 정해진 일정에 따른 것이지, 논란을 피해 나간 것은 아니다. 귀국 날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유 의료원장의 임기는 2월 말이며, 오는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권역외상센터 관리 감독 부처인 복지부는 적극적인 중재·조정에 나서기보다 뒷짐만 지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중간점검에선 본원이 병상 여유가 있는데 외상센터에 고의적으로 지원을 안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며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주대병원 본원에 ‘외상센터 지원을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 전달 정도”라고 했다.

‘국립’ 권역외상센터 만들어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아주대병원만 아니라 전국 권역외상센터의 고질적인 구조 문제라고 진단한다. 권역외상센터는 현재 전국 17곳이 지정돼 있다. 14곳은 운영 중이고, 경상대병원·제주한라병원·국립중앙의료원 3곳이 문을 열 계획이다.

문제는 정부의 재정 지원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 의료진이 24시간 대기해야 하고 병상, 시설·장비도 항상 준비돼 있어야 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과 병상, 시설·장비 등을 잡아먹는 존재인 셈이다.

수도권의 다른 권역외상센터 관계자는 “아주대처럼 갈등이 표면화되진 않았지만 잠재된 내부 문제가 언제든지 불거져 제2, 3의 이국종 사태가 나지 말란 법이 없다”고 전했다. 한 네티즌은 “정부가 국립외상센터를 건립하고 이국종 교수를 원장으로 임명하라”는 글을 올렸고 지지 글이 쇄도하고 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돈 안 되는 중증외상센터를 민간에 맡길 게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16일 현재 3400명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김영선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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