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직사회 장벽 못넘은 스마트시티 혁신실험

국민일보

[단독] 공직사회 장벽 못넘은 스마트시티 혁신실험

정재승 교수, ‘총괄’에서 ‘자문가’로 역할 축소

입력 2020-01-16 18:50 수정 2020-01-16 22:21

정부가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 ‘총괄계획가’(Master Planner·MP) 역할을 올해부터 ‘자문가’로 축소키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정부 운영 규정에선 스마트시티 MP를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 구상 초기 단계부터 준공이 완료될 때까지 총괄·조정하는 자’로 명시한다. 하지만 2018년 MP 선정 후 2년도 지나지 않아 단순 자문가로 내렸다.

저명 뇌과학자인 정재승 카이스트(KAIST) 교수까지 앞세웠던 스마트시티는 ‘민간 주도’ ‘혁신’ 타이틀을 떼고 사실상 ‘정부 주도’가 됐다. 일부에선 민간의 이상과 정부의 예산·행정 권한, 규제가 충돌한 ‘불협화음’으로 진단한다. ‘혁신’이 공직사회의 높은 벽에 가로막혔다는 해석이다.

국토교통부는 올해부터 세종·부산 등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의 MP 역할을 ‘총괄자문가’(Master Adviser·MA)로 조정한다고 16일 밝혔다. 청와대, 여당, 국토부는 지난해 9월부터 협의해 왔다. 국토부 관계자는 “스마트시티 국가 시범도시 기본 계획이 이미 나왔고, 올해부터 본격 조성에 들어가기 때문에 MP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는 내부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MP는 스마트시티 기본 계획을 구상하고, 조성 단계에서 사업시행자와 전담 기관까지 조정하는 ‘최고 책임자’다. 국토부와 자문·제안을 주고받는 수평 관계다. 반면 MA는 단순 자문·제안 및 홍보를 하는 데 그친다. 정책 자문을 할 수 있지만, 조성 업무에 개입할 수 없다. 2018년 4월 세종 스마트시티 MP로 임명된 정 교수는 “시공 중 마스터플랜이 잘 반영되는지 살펴보고, 국민 인식 확산과 국제적 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역할 조정의 공식 이유는 ‘권한 충돌’이다. 국토부와 MP가 스마트시티 전담 기관, 사업시행자를 조정하는 권한을 동시에 가졌었다. 이견이 생기면 결론을 내리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국토부는 “사업시행자와 서비스 전담 기관이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하는데 애로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년도 되지 않아, 외부 공표도 없이 슬그머니 MP 권한을 조정한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간 창의력을 적극 반영하는 ‘혁신 사업’이라는 취지는 ‘선언’에 그치게 됐다. 일부에선 ‘규제에 막힌 결과’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정 교수는 세종 스마트시티의 청사진을 ‘차 없는 도시’로 그렸었다. 국토부는 주민 민원제기 우려, 분양실적 저조 등을 이유로 반대해 왔다. 결국 지난해 12월 발표한 세종 스마트시티 지정계획안에는 ‘자동차 수를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만 담겼다.

정 교수는 지난해 6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해 “촘촘한 규제와 부처별 이견으로 점점 힘이 빠지고 있다. 예산권 등 권한을 갖춘 범정부 조직을 구성해 강력하게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 특히 민간 주도로 진행하는 2차 시범도시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한편 정부는 2018년 MP의 한글 명칭을 만들면서 ‘총괄책임가’라고 발표했다가 ‘총괄계획가’로 수정한 바 있다. 사업 초기부터 MP 권한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던 것이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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