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칼럼 주제 고르기

국민일보

[빛과 소금] 칼럼 주제 고르기

김지방 미션영상부장

입력 2020-01-18 04:02

어떤 주제로 칼럼을 쓸까 고민했다. 4가지 글감이 떠올랐다.

첫째, 6·25전쟁 70주년.

1950년 10월 2일 밤 12시. 중국 베이징의 인도 대사 파니카르는 침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저우언라이 총리가 급히 만나고자 한다는 요청이었다. 저우언라이는 어두운 표정이었다.

“한반도에서 미국이 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군하면 우리는 전쟁에 개입합니다. 38선을 넘은 부대가 한국군이라면 문제는 없습니다.”

파니카르는 중국 공산당 입장을 미국에 전하는 창구였다. 맥아더의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지 2주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당시 워싱턴 정가는 차이나 로비라고 불리는 장제스의 국민당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미군이 한반도를 통해 중국 본토를 공략해주길 기대했다.

미국은 파니카르의 전언을 믿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중국어를 쓰는 포로를 잡았다는 보고도 무시했다. 중국의 마오쩌둥과 장제스, 미국의 맥아더와 트루먼 대통령, 애치슨 국무장관이 저마다 자기의 관점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려 했다. 이승만 대통령과 국군 지휘부도 나름 고군분투했지만 장기판의 말 신세였다.

구한말 조선이 세계를 몰라 망했다고 한다. 70년 전 신생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중국 소련 인도까지 한반도라는 말판에서 장기를 둘 때 한국의 지도자들은 피난 수도 부산에서 정치파동을 일으키고 발췌개헌을 했다. 그로부터 70년이 흘렀다.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세계를 살피고 우리의 앞길을 개척해야 할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 번째 글감은 업무방해다. 이 주제로 쓴다면 초등학교 학예회부터 시작해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사건으로 연결할 참이었다.

이른바 명문학군이란 곳에선 초등학생들의 학급 장기자랑대회 때 부모들이 전문강사를 불러 ‘훈련’을 시킨다. 경쟁이 너무 심해 외부강사 강습을 금지시킨 학교도 있지만, 지금도 ‘학예회 강사’를 검색하면 초등학생들이 아이돌댄스나 마술공연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블로그 광고가 뜬다. 학교는 학생들의 흥미와 소질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아이들도 불필요한 경쟁, 비교, 따돌림 등 부정적 경험을 한다. 건전한 교육이라는 학교 업무를 방해하는 행동이다.

조 전 장관 가족이 각종 입시에서 공정한 학생 선발이라는 대학의 업무를 여러 방식으로 방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내가 조국이다”라고 외치던 사람들은 “그게 업무방해로 재판 받을 일이면 대한민국에 재판 받아야 할 학부모와 학생이 절반은 넘는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설혹 대한민국 과반수가 같은 일을 했다고 해서 잘못과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 업무방해가 일상화됐다면 그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지 그 반대가 돼선 안 된다. 장차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이라는 중차대한 업무가 방해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90년대 학번.

총선을 앞두고 정당들이 청년 영입 쇼를 벌이고 있다. 선발권을 쥔 사람들은 여전히 386, 아니 586이다. 낡은 사고방식을 드러낸 그들이 여전히 권력을 행사한다. 바뀌었으면 좋겠다. 대안으로 90년대 학번이 거론된다. 민주화 이후 버블경제 시대에 성장한 세대여서 좀 더 세련되고 사고방식이 부드럽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90년대 학번이 중심이 되겠다는 정당도 나왔다.

내가 바로 그 세대다. 솔직하게 말해 우리 세대의 정치역량은 별것 없다. 그동안 정치는 선배들인 386세대가 잘 해주리라 믿고 우리 세대는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이 세대가 문재인정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그룹인 이유다. 이제는 386세대도 90년대 학번도 정치에 관심을 줄이면 좋겠다. 20대 30대 같은 더 젊은 분들이 정치에 뛰어들어 새로운 세력을 만들고 대한민국을 변화시켜주길 기대한다.

네 번째 글감도 있었다. 잊어버렸다. 생각이 떠오를 때 휴대폰 메모앱에 적어둬야 했다. 깜빡 주의를 돌리니 무슨 글감이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90년대 학번도 이렇게 육체가 쇠하고 있다.

이 중 한 글감을 골라 칼럼을 쓰려다가, 다음 칼럼 순번 때가 되면 나머지는 묵은 생각이 될 듯해 한꺼번에 정리했다. 2020년은 다른 사람 업무 방해하지 말고, 선거로 새로운 세대가 힘을 얻고, 6·25전쟁 70주년의 교훈을 되새기는 한 해가 되기를. 그리고 기억력이 나아지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소망한다.

김지방 미션영상부장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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