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제왕적 대통령은 누가 견제하나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제왕적 대통령은 누가 견제하나

입력 2020-01-20 04:01 수정 2020-01-20 09:13



문재인정부가 민감한 시기에 무모한 방식으로 검찰을 압박하는 건 어떡하든 청와대 치부 감추려는 의도로 비칠 뿐



윤석열 총장이 물러나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통제는 불가능해질 것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의한 검찰 고위급 인사를 보면서 섬뜩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게 문민독재의 민낯인가’라는 생각도 스쳤다. 서초동 주변에선 ‘1·8 대학살’이라고 명명했다. ‘자기편’인 줄로만 알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일가에 이어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시기에 그의 수족과 수사 지휘부를 모두 잘라버렸으니 ‘학살’ ‘폭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빈자리는 현 정권과 코드가 잘 맞거나, 맞춰나갈 것으로 여겨지는 인사들로 채워졌다. 인사 내용은 해가 진 뒤 밤중에 전격 발표됐다. 노무현정부 때 만들어진 검찰총장과의 의견 교환 절차는 무시됐다.

그러면서 추 장관이 한 말은 이랬다. “이번 인사는 지역과 기수 안배를 한 가장 형평성 있고 균형 있는 인사라고 생각한다.” 청와대의 하명수사 의혹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수사를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 문 대통령 대학 후배이자 노무현정부 때 ‘문재인 민정수석’과 함께 근무했던 이를 앉히고, 호남 출신을‘빅4’에 중용한 뒤 한 말이다. 뭘 근거로 균형을 언급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6년여 전, 추 장관은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당시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정권 눈 밖에 나 수사에서 배제된 것과 관련해 야당 의원으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사·기소 담당자를 내쳤는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사 결과가 나오겠는가. 수사·기소한 검사를 다 내쳐서 겁먹은 검찰이 공소 유지에 관심도 없을 텐데 사법부 판단이 제대로 나오겠는가?” ‘추로남불’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추 장관의 자찬은 누워서 침 뱉는 격이라는 점이다. 이번에 좌천된 이들은 6개월 전 문 대통령이 임명했다. 그때에도 뒷말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조직에 활력을 부여하고, 사회적 요청을 반영한 인사”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반년 만에 문 대통령은 졸지에 균형을 상실한 인사를 단행한 장본인이 돼 버렸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화를 낼 법하나 전혀 아니다. 오히려 추 장관을 감쌌다. 그리고 한때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추켜세웠던 윤 총장을 깎아내렸다.

문재인정부는 조만간 제2의 학살을 단행할 예정이다. 주 타깃은 청와대 관련 사건들을 수사 중인 검사들이 될 것이다. 적폐 수사 때 수사와 공소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1년 이상 자리를 유지해주던 현 정부 관행을 이번에 스스로 깨뜨릴 가능성이 크다. 수사 방해, 사법 방해라는 비난이 다시 쏟아질 것이지만 밀어붙일 태세다. 그리고 고위공직자범죄수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여세를 몰아 검사들의 반대에도 검찰 직제를 손보는 등 ‘윤석열 검찰 죽이기’를 계속할 것이다.

무모하고, 무리한 폭주다. 여유가 없다. 조급해 보이기까지 한다. 왜 이럴까.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듯하다. 그 불안은 청와대를 겨냥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검찰 수사 이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청와대 안팎의 친문 인사들이 문 대통령의 오랜 지기(知己)를 당선시키려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집권세력인 만큼 동원한 수단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재수 건’과 관련해서는 조국 전 민정수석조차 무시할 수 없는 실세들이 연관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여전하다. 청와대를 비롯한 집권세력으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치부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권은 오는 4·15 총선 승리를 위해 지금까지 매진해왔는데, 검찰 수사로 헛수고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총선 임박한 시점에 청와대에 불리한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고, 이에 민심이 동요해 제2당으로 내려앉는다는 건 여권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레임덕이 불가피하고 장기집권 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그래서 검찰을 향한 문재인정부의 강공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청와대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거부한 데 이어 친문으로 분류되는 검찰 수사 대상자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소환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건 그 징조다. 진보 진영 내에서조차 ‘청와대가 법치를 부정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마이동풍이다. 앞으로 여권에 불리한 수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검찰 개혁에 맞서려는 검찰의 불순한 의도라는 프레임을 만든 뒤 정치 공방으로 희석하려 할 것이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이미 사법부를 거의 장악한 상태다. 올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입법부까지 손에 넣게 된다. 그러면 국가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3권 분립의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왕적 대통령이 될 것이다. 게다가 윤 총장이 물러나면 검찰에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살아 있는 권력, 제왕적 대통령은 누가 견제할 건가.

편집인 jhkim@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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