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작은 결혼식의 조건

국민일보

[아재 기자 성기철의 수다] 작은 결혼식의 조건

입력 2020-01-21 04:06

결혼식을 아예 않기로 한 친구
체면·허례 볼모잡힌 결혼 문화
작지만 더 의미있게 할순 없나
신랑·신부 의지와 노력이 관건


10여일 전 고교 친구가 동창회 카톡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제일 성가신 일이 결혼식 하객으로 가는 일이다. 결혼이 인륜지대사라고 했지만 당사자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하객으로 가서 축의금 내고 서둘러 식사나 하고 나오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딸이 곧 결혼한다. 결혼식은 양가 합의로 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낸 축의금이 좀 아깝긴 하지만 현행 결혼식 문화를 바꾸자는 게 내 지론이므로 어쩔 수 없다. 양가 만나서 밥만 먹기로 했다.”

특이한 뉴스였기에 반응은 다양했고, 평가는 엇갈렸다. “아서라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도 괜찮다.” “모르긴 해도 좀 서운한 사람 많을 건데.” “결혼식 때 아니면 친구 자녀 얼굴 언제 볼 수 있겠나.” “혼인은 혼주, 상은 상주 맘이지.” “대단하네, 둘이 잘 살면 그만이지 뭐.” “반만년 역사에 개혁을 이루었다.” “멋지고 용기 있는 결정에 박수 보내마.”

며칠 후 친구한테 전화를 해봤다. 혹여 하객 초대 없이 어디선가 조용히 ‘작은 결혼식’을 하려나 생각했지만 말 그대로 밥만 먹을 계획이란다. 양가의 부모·자녀 8명이 최고급 호텔에서 식사하는 걸로 결혼식에 갈음한다는 것이다. 예물이나 예단도 일절 하지 않으니 결혼비용은 식사비 100만원 남짓이 전부라고 했다. 문학평론가로 출판사를 경영하는 친구는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로 “언젠가 내가 칼럼으로도 썼지만 떠들썩하게 치르는 결혼식이 아무런 의미도 없기에 굳이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딸과 사윗감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결혼식을 아예 하지 않기로 한 친구의 결정은 우리네 보편적 정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작은 결혼식, 스몰 웨딩은 결혼 적령기 젊은이와 부모들 사이에서 곧잘 입에 오르내리는 주제다. 얘기는 기존 결혼식 문화를 비판하는 데서 시작된다. “시끌벅적하게 하객을 맞다보면 주인공인 신랑·신부가 지쳐서 파김치가 된다.” “도떼기시장 같은 결혼식은 정말 아닌 것 같다.” “돈으로 체면을 사는 허례허식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노후 비용을 자녀 결혼에 쏟아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축의금 빚 갚는 심정으로 결혼식 참석하는 건 정말 싫다.” “제법 가진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호화 결혼식 하는 것 보고 서민들이 따라 하니 그게 문제다.”

이런 정서가 반영된 듯 작은 결혼식을 생각해봤거나 계획 중인 사람은 꽤나 많다. 모임에서 작은 결혼식을 하겠다고 공개 다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작은 결혼식을 생각했지만 실행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이 90% 이상이라는 통계도 있다. 웬만한 각오로는 하기 어렵다는 얘기겠다.

작은 결혼식은 초대 하객 수를 적게 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비용을 저렴하게 최소화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최고급 호텔에서 휘황찬란하게 치르면서 하객 수를 제한한다고 작은 결혼식이라 할 순 없다. 그러니 둘을 합친 개념으로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사실 친인척이 아주 적거나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성대하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세상 물질 제법 가진 사람이 체면 세우려고, 또는 한밑천 잡겠다는 심사로 호화판을 벌이는 게 꼴불견이란 얘기다.

과거에도 호화, 고급 결혼식이 왜 없었겠냐마는 경제적 상류 계층에 한정돼 있었다. 대다수 서민들은 큰 부담 없이 치를 수 있었다. 예식장 인근 대형 식당을 빌려 갈비탕이나 국수 한 그릇 대접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게 아니었다. 부족하다싶어 집에서 떡이나 무침, 전 따위를 마련해 가서 내놓으면 좋은 평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너도나도 고급 뷔페다. 1인당 최소 4만원, 5만원이니 혼주와 하객 모두 부담이다. 최소 축의금이 5만원을 넘어 10만원으로 급상승하는 이유다.

약 5년 전 호화 결혼식이 사회적으로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언론에서 작은 결혼식 캠페인을 벌이는가 하면 ‘검소한 혼례 운동본부’란 시민단체가 결성되기도 했다. 당시 이각범 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딸이 작은 결혼식 치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됐었다. 미국 저명 로펌에 다니는 딸이 서울에서 간소하게 혼례를 올리고 싶다 해서 양가 합쳐 2000만원으로 치렀다고 했다. 양가 합쳐 신랑·신부 기준 사촌 이내 친척 80명과 신랑·신부 친구 55명, 고교 및 대학 은사 20명만 조용한 음식점에 초대했으며, 축의금과 축하 화환은 일절 받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결혼적령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이 있으니 남의 일 같지 않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신랑·신부를 친하게 알고 결혼을 진정으로 축하해줄 사람 양가 합쳐 50명 정도만 깔끔한 식당으로 초대해 갈비탕에 비빔밥 정도 차려놓고 예식 올리는 모습. 두 시간이면 어떻고 세 시간이면 또 어떤가, 참석자 전원이 돌아가며 추억담이나 덕담 한마디씩 해주면 새 출발하는 젊은이들에게 더 없이 큰 축하와 격려가 될 것이다. 작지만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결혼식이 되지 않을까.

이럴 경우 굳이 축의금을 받을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 혼주와 하객 모두 부담이 없겠기에 덤으로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장면을 성사시키려면 신랑·신부에게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대략 첫 대면하는 사돈 간에 이런 제안을 했다가 상대방이 완곡하게나마 거절해 버리면 더 이상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신랑·신부가 주도권을 갖고 각자 자기 부모를 설득시키는 게 관건이지 싶다.

우리 아이들에게 얼핏 의견을 물어본 적이 있다. 아쉽게도 썩 좋은 반응을 받아내진 못했다. 기다려 보련다.


성기철 경영전략실장 겸 논설위원 kcsu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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