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월 23일] 혀의 양면성

국민일보

[가정예배 365-1월 23일] 혀의 양면성

입력 2020-01-2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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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환난과 핍박 중에도’ 336장(통 383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야고보서 3:7~12


말씀 : 우리가 세상에 살다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그 실례를 몇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고, 세 번째는 짠물이 단물을 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같은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사람들을 저주하는 행위입니다. 성경 말씀에서는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10절) 고 분명한 어조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생각으로 자연 현상으로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기적들을 매일의 삶 속에서 계속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혀는 걷잡을 수 없는 불과 같은 파괴력도 문제지만 그것을 길들일 수 없다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통해 인간에게 피조물, 생물들을 지배하는 은혜를 선물로 주셨었습니다(창 9:1~7). 그러나 혀는 능히 길들일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8절). 그러기에 우리의 혀는 육체의 훈련이 아니라 경건의 훈련으로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나면 생각 없이 다른 사람 상관하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인간의 악한 본심이 사회적 지위나 인격과 관계없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헐크처럼 되는 것입니다. 하찮은 일들을 가지고 쉽게 흥분하고 약간의 자극만 받아도 말이 거칠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혀를 통제하는 일은 영적인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성숙으로 나아가는 수단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혀를 그리스도의 주권 밑에서 통제시키고 의의 도구로써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향해 듣기 좋은 말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꾸중도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경고, 권고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고자세나 우월감을 가지고 남을 누르거나 가르치는 교만함이 없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가끔 힘든 말을 할 때는 겸손과 슬픔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경외심으로 했습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 3:18).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부터 우리가 기도할 제목입니다. 요리사의 손에서 칼은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도구가 되지만 똑같은 칼이라도 강도의 손에 들려지면 사람을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혀는 칼과 같이 파괴력과 함께 생산성, 양면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하겠습니까? 사람들이 내 말을 들을 때 상처를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위로를 받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도 저와 여러분의 말을 통해 기뻐하고 위로받는 사람들이 많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 위로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나의 말을 통하여 이웃들이 위로받고 힘을 얻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잘 훈련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승민 목사(부천 원미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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