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문석균의 ‘아빠 마이너스’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문석균의 ‘아빠 마이너스’

손병호 정치부장

입력 2020-01-23 04:01

민주화운동을 한 여권 인사들은 자식들한테 잘해주지 못해 안타까웠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한창 아이들이 자랄 때 수배자가 돼 도망 다니거나, 감옥을 들락거려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회한들이다. 생후 6개월 된 외동딸을 두고 4년 넘게 감옥에 가 있었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그런 경우다. 결혼하자마자 남편이 10년 이상 옥살이를 하고 본인 역시 2년6개월간 투옥돼 마흔이 넘어서야 외아들을 뒀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더 젊었을 때 아이를 낳고 기르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사회적으로는 존경할 만한 일을 했지만, 아이들한테는 많이 아쉬운 아빠, 엄마였다.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씨도 그런 아빠를 둔 아이였다. 의정부 사람들은 문씨를 두고 “동네가 키운 아이”라는 말을 한다. 어릴 때 아버지가 투옥돼 있었고, 옥바라지로 엄마까지 집을 비울 때가 잦아 동네 사람들이 대신 챙겨줬다는 얘기다. 동네 떡볶이집, 순대집, 국숫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빨갱이 자식’ 사건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초등학교 때 민주화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수배되자 학교 친구들이 “석균이 아버지는 빨갱이”라고 놀렸다. 아이들과 싸움이 붙었고 선생님한테 걸렸다. 선생님은 혼을 내주는 대신, 아이들 앞에서 “석균이 아버지는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고, 지금 미국에 있어 집에 못 온다”면서 다시는 놀리지 말라고 했다. 그날 하교할 때 석균이는 선생님한테 “저는 선생님이 거짓말한 것 다 알아요”라면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접경지대이자 군사도시인 의정부에서 ‘빨갱이 자식’이라는 놀림은 어린아이에게 견디기 어려운 낙인이었을 것이다.

문씨가 야당 정치인의 아들로 자라면서 비슷한 일은 자주 있었다. 또 남들이 겪지 않을 일들도 많이 겪었다. 야당 인사의 집에는 ‘기관’ 사람들이 늘 기웃거렸고, ‘동지’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들락거리는 ‘삼촌’과 ‘이모’들이 수백명이었다.

문씨는 과거 아버지가 하던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서점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들 대부분이 망해가는 상황에서 떠맡은 것이다. 문씨는 의정부 사람들에게 소중한 문화적 공간인 서점을 살리려 안간힘을 써왔다. 그는 현재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서점업계와 소상공인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으로 소상공업계와 당의 소통 창구로도 활동한다. 지역구에 금방 뚝 떨어진 새내기 정치인이 아니라, 그동안 당원으로서 활동을 꾸준히 해온 인사라는 얘기다.

문씨가 문 의장이 거쳐 간 한국청년회의소(JCI) 중앙회장을 한 이력 때문에 이 역시 아빠 찬스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이 단체는 사회봉사 활동을 주로 하는 단체다. 찬스라기보다는 부역에 더 가깝다. 만 40세가 지나면 탈퇴해야 해서 문 의장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어렵다. 정치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밟는 코스인데, 자유한국당 정갑윤, 원유철 의원과 민주당 백재현 의원 등이 이 단체 출신이다.

문씨에게 아빠 찬스가 없지 않았겠지만 아빠 마이너스도 많았던 인생이었다. 문 의장이, 또 문씨가 아빠 찬스라고 비난만 받을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 억울함 때문에 문씨가 버티는 것이고, 문 의장이 말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씨가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문씨의 출마를 두고 가장 시비가 되는 찬스가 지역구의 당 조직을 물려받은 일이다. 물론 그 조직에 문씨의 기여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문씨가 공식 당 조직을 내려놓길 바란다. 꼭 출마해야 한다면, 차라리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게 공정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최적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의정부가 진보 진영에 불리한 지역구인데 무소속 신분은 더더욱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좀 더 정정당당한 길을 걷길 바란다.

손병호 정치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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