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새로움을 위하여

국민일보

[혜윰노트] 새로움을 위하여

정지연 에이컴퍼니대표·아트디렉터

입력 2020-01-24 04:01

내게 닥치는 일 너무 힘들게 받아들여선 안 돼…
그러면 새로움을 잃어버리기 때문


언젠가 친구가 들어보라며 건넨 앨범의 제목은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안 싸우는 사람들-이라니, 제목을 고민하다가 옆에 있는 어린이에게 의뢰한 게 아닐까 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순수하다 못해 날것 같은 그 느낌은 앨범 전체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사모음집은 그대로 한 권의 시집이었고, 노래들은 아름다운 낭독이자 간절한 위로와 당부였고, 희망을 위한 절규였다. 한 장의 음반을 듣는 동안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서 여러 번 울 뻔했다.

‘걱정말아요 그대’라는 곡은 일상에 지친 나를 위해 만든 것 같았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다정한 위로는 계속 이어지는데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라는 구절에 이르러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새로움을 잃어버린다는 것,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음악 덕분에 깨닫는 순간이었다.

힘든 일이 많으면 웃음을 잃을 수 있고 건강과 친구를 잃을 수도 있지만 새로움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다. 이후로 종종 새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세상엔 새로움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 아픈 기억과 후회, 욕심과 원망, 질병과 뜻밖의 사고 등을 경험하는 사이에 우리는 노래하는 법과 사랑하는 법을 잊는다. 멍한 표정으로 같은 루틴을 반복하며 새로움을 느끼는 능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어린 조카를 보면, 사실 우리 모두는 새로움의 천재로 태어난다. 집 안을 기어다니면서도 온갖 것을 탐험하고 발견하며, 사물에도 감정을 이입하고 별 것 아닌 것도 진심으로 좋아하고 슬퍼할 줄 안다.

당신은 기억할 것이다. 처음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던 순간의 기쁨, 처음으로 혼자 운전을 하던 날의 긴장감, 처음 떠났던 해외여행의 신남을 기억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유행가가 내 얘기 같던 첫사랑의 추억, 신입사원이 되어 첫 출근을 하던 아침을 말이다. 찬란한 날들은 새로움의 세례로 이루어진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예술가나 나 같은 기획자에게 새로움은 특히 중요하다. 더 이상 새롭지 못하다면 직업적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반드시 새로움의 감각을 사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여러 뉴스에도 귀 기울이고,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게 일어나는 일을 너무 힘들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힘든 일이 많으면 새로움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걱정과 불안과 분노 속에서 힘들지 않을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어떤 날에는 ‘걱정말아요 그대’와 같은 노래라도 실컷 따라 부르며 훌훌 털어버리려고 노력한다.

20만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67세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를 보면 새로움의 능력은 나이와 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밀라노의 작은 집에서 옷장과 살림,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공개하며 패션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나눈다. 나이만큼 온갖 풍파도 겪었을 그녀가 방송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이게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어때요, 재밌지 않아요?”다. 오래된 물건을 리폼하는 것, 플라스틱을 정리함으로 재활용하는 것, 가벼운 산책과 평범한 일상도 그녀에겐 참 재미있는 일이 된다.

나의 새로움지수는 얼마나 될까. 오래 미뤄두었던 옷장을 정리하고, 좋은 습관에 스스로를 길들이고, 새로운 운동을 배우고, 타인과 관계를 만들어갈 힘이 나와 당신에게 있기를 바란다.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 앨범의 후반부에 이르면 ‘늦지 않았습니다’라는 곡이 있다.

‘시작해 다시 시작해 다시 시작합시다/ 다 같이 시작해 다시 시작해 늦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험한 광풍도 지나보면 별 것 아니죠/ 잠시라도 숨었던 내가 정말 부끄럽군요/ 늙어 죽을 때까지 해는 비춰줍니다/ 누구나 자기 뜻대로 다시 시작합시다/ 누구도 어느 누구도 늦지 않았습니다/ 시작해 다시 시작해 늦지 않았습니다.’ 이 노래를 새로움이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보낸다.

정지연 에이컴퍼니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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