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경제 살리는 힘은 기업으로부터 나와

국민일보

[경제시평] 경제 살리는 힘은 기업으로부터 나와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 설립자

입력 2020-01-28 04:05

‘경제를 살리는 힘은 기업으로부터 나옵니다.’ 정세균 총리의 취임 일성이다. 4차산업의 뉴 패러다임과 보호무역주의의 거센 물결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세계 경제 환경 하에 그 무엇보다도 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 총리에게 거는 기대, 특히 기업인의 기대는 여간 큰 것이 아니다. 특히 우리의 주력 제조업들이 경쟁국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재인정부가 ‘제조업의 부흥과 회복’을 그렇게 강조했음에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산업지도에서 빛바랜 잉크처럼 흐릿하게 지워져가고 있다. 이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조선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동차산업이나 또 그를 뒷받침하는 산업의 산업인 철강산업의 현실을 보면 엄중하기 이를 데 없다.

산업은행이 이미 세계 1, 2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라는 구조조정의 칼을 뽑아든 조선업은 그렇다고 치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 유일하게 산업 진입에 성공했다고 하는 자동차산업의 형편은 어떤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넘어서기 위해 모든 자동차 회사는 예외 없이 친환경 자동차를 만들지 않을 수 없다. 친환경 자동차의 설계 및 양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도 다른 모든 글로벌 경쟁사들과 마찬가지로 정부보조금이 없으면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친환경차의 현실이다. 수소전기차는 수소의 생산, 운반, 저장 및 충전소 확충 인프라 구축까지도 정부가 담당해야만 한다.

쌍용차의 상황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당장 2020년부터 시행되는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에 부합해 출시할 친환경차가 하나도 없다. 신차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R&D는 글로벌 차원에서 수행하고 국내에는 조립공장 기능만 가지고 있는 르노삼성이나 지엠코리아와는 달리 쌍용차는 당장 R&D 기능을 복원하지 않으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위기다.

쌍용차가 어려워지면 협력업체나 관련 일자리 등 산업 생태계 전체가 충격을 받는다. 쌍용차를 살리기 위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경기도, 평택시를 포함한 중앙 및 지방정부 당국과 산업은행, 노동조합, 주주 및 경영진 등 모든 이해당사자가 담대한 결단을 내리고 회생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의 적극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각에서는 친환경 미래차에 대한 정부의 투자를 마치 특정 기업을 위한 특혜로만 보는 경향도 있어 엄중한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철강산업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철강산업은 조선업이나 자동차산업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철강시장은 사실상 한·중·일 단일 시장이 되어 3국 기업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응해 중국과 일본은 고로 업체들의 합종연횡을 단행해 경쟁력이 비약적으로 제고된 초대형 제철소로 거듭난 반면 한국의 철강업을 대표하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각자도생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철강 기업들의 공세적 마케팅에 대응하고, 미세먼지의 최대 원인 제공자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천문학적인 환경설비 투자를 단행하기 위해서는 한국 철강산업도 구조조정을 통한 대형화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철강산업 초대형화를 지원한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 정부는 아직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 총리는 취임사에서 ‘배의 항로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과 파도가 아니라 돛의 방향’이라고 설파했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시장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가 나서야 할 때가 있음을 이야기한 것이고, 그것은 바로 지금이다.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딪힐 공정거래 이슈와 불필요한 통상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적극적인 관여가 필요하다.

‘경제를 살리는 힘은 기업으로부터 나옵니다’라고 말하는 분이 총리가 된 것을 환영한다. 그리고 그분의 철학이 대한민국의 제조업 부흥과 회복의 밀알이 되어 다시 한번 제조업 황금기를 맞게 되기를 간구한다.

이계안 2.1지속가능재단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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