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길 위의 민감성

국민일보

[시온의 소리] 길 위의 민감성

입력 2020-02-0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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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가 한산하다. 서울 한복판이 맞나 싶다. 콜록콜록 소리가 나자 일제히 버스 안 승객들의 시선이 한 젊은이에게로 향한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이다. 몇몇 사람은 한숨과 짜증 섞인 탄성도 내뱉는다. 그럴 만도 하다. 설 전후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이다. 기침을 한 젊은이는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사방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제법 큰 소리로 변명을 한다. “천식이에요. 제가 천식이 있어서 추운 날에는 기침이 나와요.” 그제야 조금 안도하는 눈빛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채 살짝 뒷걸음을 치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가 언제부터 옆 사람의 작은 움직임이나 소리에 이렇게 민감했던가. 도시인의 일상을 살면서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신경해 왔다. 물론 무신경이 무관심과 동의어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건 도시인의 배려 같은 것이었다. 익명의 구성원들이 좁은 공간에서 계속 부딪히는 도시적 삶 가운데 상대방에게 무관심하려는 태도는 사실 매우 신경을 쓰려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미 타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가장 먼 거리에 자리를 잡으려 한다. 그건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오히려 예절이며 몸으로 보내는 메시지다. ‘나는 당신이 처음 보는 나와 함께 좁고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해를 끼칠 의사가 없으니 안심하세요. 아, 물론 당신도 그래 주길 바래요.’ 이런 행동양식을 사회학에서는 “시민적 무관심”이라 부른다.

시민적 무관심은 오히려 민감함이지 무례함이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신경 써서 배려하는 시민들 사이의 무관심한 태도가 매일 반복되고 일상이 되다 보니 어느덧 주변 사람들에게 무신경해진 것도 사실이다. 바쁘고 벅찬 우리의 하루하루가 이런 무신경의 일상화에 한몫했을 거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비상 상황은 그동안 우리가 잊었던 시민 간 상호작용의 민감성을 드러냈다. 접촉으로 감염이 되고 아직 치료약도 없는 신종 바이러스라는 말에, 늘 걷던 길 위에 서는 일이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됐다.

논리적 비약일까. 아니면 내 상상력의 엉뚱함일까. 유령도시라도 된 듯 텅 빈 거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예레미야가 ‘다시 길 위에 서라’고 했던 예언자적 외침이 떠올랐다.(렘 6:16)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생이나 전파 과정이 여호와의 도를 잊은 사람들의 불신앙 때문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하지만 내일 일을 알 수 없고 늘 낯설고 불안한 만남과 사건이 가득했던 유목민 생활을 그치고 성읍과 왕궁을 짓고 안주하며 산 지 어언 400여년, 가난한 자들을 향해서도 약자들을 향해서도 민감성을 잃고 약육강식의 생활을 당연하게 여기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면서, 선지자가 제안한 치료약은 ‘다시 길 위에 서라’는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 내가 맞닥뜨린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보호하시는 여호와의 현존을 앙망하는 영혼의 민감성을 다시 회복하려면, 다시 낯설고 앞을 모르는 길 위에 서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때 예레미야의 권고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모두가 길 위로 쏟아져 나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잘못된 적용이다. 하지만 그 낯섦, 그 불안함, 그 미지의 상황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존재의 민감성만큼은 이 기회에 다시 회복해도 좋겠다. 바이러스를 살피는 열심의 반만이라도 매일 스쳐 가는 이들의 표정을, 숨결을, 의미를 살폈는지. 당장 내가 살겠다고 살피는 민감성이기는 하지만, 실은 네가 살아야 나도 산다는, 네가 안전하고 건강해야 나도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초연결 글로벌 사회 한복판에서 묵상해봐도 좋겠다. 더 큰 피해 없이 신종 코로나가 잘 통제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급작스레 우리의 일상이 된, 상대방을 살피는 이 민감성만큼은 배제와 혐오의 방식이 아니라 살피고 살리는 힘으로 이후에도 쭉 지속됐으면 좋겠다.

백소영(강남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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