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강단에서부터… 설교가 하나님-교인 연결

국민일보

개혁은 강단에서부터… 설교가 하나님-교인 연결

김영우 목사의 진정한 교회개혁 <5> 개혁은 설교의 회복

입력 2020-02-1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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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림교회 성도들이 지난해 여름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열린 ‘2019 혜림 한가족 사랑과 힐링 여름수련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혜림교회 제공

교회개혁의 원형인 종교개혁은 면죄부와 성물숭배 같은 허망한 길잡이를 따라가다 구원의 길을 잃은 순례자들을 구원의 유일한 문인 ‘성경’으로 이끈 구원 사건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어긋난 가르침으로 인해 모호해진 구원의 문 앞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명한 문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때 사용된 도구가 ‘설교’였습니다. 설교는 그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였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설교를 통해 교회를 수렁에서 건지셨습니다. 21세기 최고의 설교자로 불리는 로이드 존스(1899~1981)의 말처럼 “종교개혁의 시작과 끝은 설교”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에게 교회란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고 성례가 바르게 집례되는 곳’이었습니다. 교회의 회복을 이야기할 때마다 모범의 상징으로 언급되는 초대교회는 ‘말씀선포와 성례’라는 두 기둥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례 역시 말씀의 가르침에 의해서만 바르게 집행된다는 측면에서 초대교회를 지탱하는 힘은 오직 말씀이었습니다.

스데반과 빌립 집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사역을 위해 세워진 초대교회의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성경에서 그들은 구제하는 현장이 아니라 설교하거나 말씀을 가르치는 길거리에서 발견됩니다. 초대교회의 뚜렷한 특징이 말씀선포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베드로나 바울이 힘써 설교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는 설교를 통해 건강한 다음세대로 이어져갔습니다.

그러나 로마로부터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받는 중세에 접어들면서 설교는 서서히 교회의 중심에서 밀려납니다. 나라가 교회를 공적으로 인정하고 전 국민이 기독교의 영향 아래에 들어오자 더 이상 치열하게 설교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입니다. 거기다가 성직매매 등으로 자격미달자들이 대거 교회의 설교자가 됨으로써 설교의 가치는 더욱 약화됐습니다.

예배의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설교시간은 사제의 개인자랑이나 신변잡기적인 이야기 혹은 그들이 전하는 기괴한 전설로 채워졌습니다. 탁월한 설교자였던 어거스틴(354~430)의 죽음 이후 중세의 사제들은 설교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설교를 해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라틴어 낭독이었기에 회중에게 설교는 그저 낮선 언어를 구경하는 시간일 뿐이었습니다.

설교의 약화는 교인들을 성경에서 멀어지게 했고 성물숭배 같은 비성경적 행위에 교인들이 영적 흥미를 갖게 하는 불행으로 이어졌습니다. 교회지도자들은 성경과 멀리 떨어진 의식이나 조악한 말장난으로 설교의 영광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생각도 그 말씀을 받아 전달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중세를 깊은 영적 타락으로 몰아간 장본인은 설교에 힘을 쏟지 않던 성직자들이었습니다. 바른 설교 준비보다 각종 프로그램 마련과 운영에 더 많은 힘을 쏟거나 그러한 것들이 교회의 강단을 장악하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떤 면에서 종교개혁 이전을 방불케 합니다.

그렇게 중세교회에서 성경적인 설교가 사라지자 그 영향은 교회를 넘어 세상의 모든 영역에까지 미쳤습니다. 정치 교육 경제 윤리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이 타락과 불의로 점철된 것입니다. 설교 부재의 결과였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설교했던 독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전경. 국민일보DB

종교개혁은 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변화는 강단에서 시작됐습니다. 종교개혁의 주역들인 루터 츠빙글리 칼뱅 낙스 등의 공통점은 모두 뛰어난 설교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설교했고 자국민의 말로 설교했고 알기 쉬운 말로 설교했습니다. 그들이 설교할 때 그들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설교자들은 그들을 다시 성경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프라하대학의 교수였던 요한 후스(1369~1415)가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설교했다는 이유로 화형을 당한 게 불과 한 세기 전이었으니 종교개혁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설교임이 분명했습니다. 설교는 하나님과 교인을 성경으로 연결하는 다리였습니다. 회중은 그 다리에서 자신을 돌아봤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고 거기서 세상을 이길 힘을 얻었습니다.

중세 1000년은 설교의 암흑기(dark age of preaching)였습니다. 바른 설교가 사라지자 교회지도자들에게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 때 사용됐다는 못들이나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는 데 사용했다는 세숫대야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것들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교회에 수천 개의 성물이 쏟아져 나왔고 사제들은 그것의 진위를 감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설교가 회복되자 그 모든 것들이 일소됐습니다.

종교개혁은 그런 면에서 교인들에게 말씀이 아닌 다른 것으로 감동을 주려고 시도하는 교회들을 권면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우뚝 세우는 길은 설교의 회복에 있다는 외침입니다.


<김영우 혜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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