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중도층이 날 세워야 나라가 산다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중도층이 날 세워야 나라가 산다

입력 2020-02-10 04:01

공소장 비공개가 인권보호 위한 것이라면
‘청와대 캐비닛 문건’ 생중계 브리핑은 왜 한 것인가
분별력 있는 상식적 중도층이 분노할 정도로 몰상식이 횡행
선거 과정에서 중도층이 몰상식을 깨버려야 한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을 상식이라고 한다.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 이게 상식의 뜻풀이다. 그러니 사회나 공동체의 구성원 대부분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게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반대는 몰상식, 비상식이다. 상식이 전혀 없거나 상식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나라에 몰상식적인 일들이 부쩍 늘었다.

청와대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 사건의 공소장 비공개는 너무도 몰상식한 결정이다. 추미애 장관은 “익숙한 관행을 조금식 고쳐나가는 게 개혁”이라고 해명했다. 20년 가까운 관행을, 그것도 전 대통령 박근혜와 당시 수석비서관 등이 대법원에서 2년형 확정판결을 받은 행위와 비슷한 혐의로 수사 받는 자기편에게 첫 적용하는 게 상식적인가. 그렇다면 정권 초기 적폐 수사에는 왜 적용하지 않았나.

2017년 10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기소는 물론 수사도 하기 전에 전 정권의 이른바 ‘청와대 캐비닛 문건’을 TV 생중계 브리핑한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자기편에만 보호해야 할 인권이 있는 것인가. 몰상식하지 않은가.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정의당에서도, 참여연대도 비판 성명을 낸 건 몰상식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70명을 넘어섰다는 청와대 출신의 집단 출마도 우스꽝스러운 몰상식이다. 겉으로라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겠다며 책임·의무·희생을 내건, 시쳇말로 ‘청와대 순장조’도 이 정권엔 전혀 없다.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청와대 이력을 한 줄 보태려고 중간 보스의 힘을 빌리거나 어떻게 해서든지 줄을 대 들어갔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런 이들의 머릿속엔 공직자의 자세보다는 정치권력을 향한 질주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권 핵심들 사이에서는 이게 선거 과정에서 최대 악재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그러니 대통령 이름을 표기하느니 마느니 하는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몰상식을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선거 악재임을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건 “너희들만 해먹냐”는 386 권력 핵심 이외 운동권 후배들의 폭발하는 불만을 정리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상식이 나서야 한다. 정치적 중도층은 과거와 달리 진보와 보수, 강경과 온건 사이 어디 위치한 중간자적 입장을 견지하는 이들이 아니다. 그건 촛불집회로 대통령을 탄핵한 사건에서 중도층이 견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중도층은 진화했다. 그리고 성숙해 간다. 그것은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서구가 중세와 절대왕권시대를 끝내고 근대시민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중산층·중도층은 크나 큰 역할을 했다. 나는 중도층을 합리적인 정보로 상황을 판단하고, 그것이 쌓여 사리 분별력을 갖춘 이들이라고 정의한다.

점점 쌓여가는 몰상식은 중도층의 분노를 자극한다. 아니 분노지수가 이미 상당히 높아졌다. 대통령도 끌어내린 그들이다. 그들은 가짜뉴스를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자기편이라서 무조건 옳다고 하는 보수·진보의 ‘~빠’들의 소아병적 아집을 경멸하며, 절대주의에 빠지지 않고,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갖고 있다. 착함과 무능함을 구별할 줄 알고,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대안을 생각할 준비가 늘 돼 있으며, 대안이 마땅치 않을 때는 최악을 피하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현실성도 갖추고 있다.

이를테면 권력기관이 ‘논두렁 시계’로 장난친 행위가 분명히 잘못됐고, 그래서 권력기관 개혁이 절실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것을 빗대 자기편 범죄 의혹을 감추려는 행위는 더 나쁘고 위선이란 것도 잘 안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우선순위 조정이나 전진을 위한 한 걸음 후퇴 같은 전략적 선택을 할 능력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고 간결하게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한 것 같은 분별력이 있는 것이다.

중도층이 조금 모자라는 건 날을 세우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중도층은 분별력 있게 날을 세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선거날 확실히 날을 세워 투표를 해야 한다. 상식적인 중도층이, 분별력 있는 중도층이 날을 세워야 나라가 산다. 중도층은 늘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무엇보다 몰상식을 깨부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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