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우 칼럼] 검찰정치

국민일보

[이흥우 칼럼] 검찰정치

입력 2020-02-12 04:01

선택적 수사를 하고 담당 검사에 따라 기소 여부 달라질 수 있다 판단하니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

대선 적합도 2위 尹 총장, “정치할 생각 없다” 했으나 대호프로젝트’ 소문 무성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데가 있다.” 17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가 끝난 뒤 사전에 새롭게 등재된 낱말, ‘검사스럽다’의 정의다. 검찰이 정경심 교수의 딸 표창장 위조 혐의에 두 개의 공소장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매우 적확한 정의다. 정 교수 소환조사없이 기소한 첫 번째 공소장을 취소하면 수사 부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어서 검찰은 전혀 다른 두 개의 공소장을 “사실상 같은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논리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사전 정의 그대로다.

검사와의 대화는 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의 동력을 얻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그러나 검사들은 애초 그럴 마음이 없었다. 전국 검사를 대표해 참석했다는 10명의 검사는 대화 내내 대통령을 몰아붙였다.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은커녕 법무부가 갖고 있는 검찰 인사권마저 검찰에 내놓으라고 대통령을 압박했다. 인권도, 개혁도 아닌 검찰의 이익이 이들의 최우선 순위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행사에 배석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를 “목불인견”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 변했다. 하지만 검찰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세상은 검찰을 중심으로 돈다’는 검찰주의가 검찰 내부에 여전히 팽배하고, 이를 신봉하는 검찰주의자들이 요직을 꿰차고 있다. 이들에게 검찰 권한을 뺏어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하도 검찰 개혁에 대한 여론이 높아 대놓고 반대하진 못했으나 속내까지 그랬을까 싶다.

정 교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재판도 곧 시작된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그가 법무장관에 지명되지 않았어도 가족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가 이뤄졌겠냐는 것이다. 현 정부에서 조국은 검찰 개혁의 상징 같은 존재다. 마침 조국 가족 비위 혐의가 검찰에 포착됐고 윤석열 총장은 ‘부적절’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검찰은 자신의 의견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전례를 찾기 힘든 매머드 수사단을 꾸렸고 사소한 것까지 샅샅이 훑었다. 그래서 딸이 박근혜정부 때 받은 장학금은 아무 문제가 안 되는데 현 정부 때 받은 장학금은 뇌물이 됐고, 아들 과제를 도와준 조 전 장관의 행위는 미 조지 워싱턴대 업무를 방해한 범죄가 됐다.

혐의가 있으니 검찰이 수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 아들 논문 의혹에 대한 수사는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도통 소식이 없다. 수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 이뤄지는 게 상식이다. 비슷한 두 사건을 두고 검찰이 이렇게 다른 선택적 수사를 하니 검찰이 정치한다는 비판이 들끓는 게다. 검찰은 십중팔구 나경원 파일을 캐비닛에 보관하다 필요할 때 요긴하게 써먹을 거다. 안 그럴 검찰이 아니다.

검찰은 공수처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튿날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가 있는 한국당 의원을 무더기 기소했다. 법이 통과된 마당에 이 사건을 더 쥐고 있어 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그러면서도 채이배 의원 감금 사건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여상규 국회 법사위원장은 기소대상에서 제외하는 선심을 썼다. 검찰이 국회 법사위 피감기관이어서 그랬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된 전현직 청와대 고위인사 일괄기소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검찰 인사로 수사 담당 검사가 바뀌면 불기소될 수 있어 서둘러 기소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담당 검사에 따라 기소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수사라면 혐의를 특정하지 못했거나 법과 원칙이 아닌 다른 잣대가 사용됐다고 볼 수도 있다.

최근 발표된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 윤 총장이 이낙연 전 총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윤 총장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대호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란 소문도 무성하다. 정치권에선 벌써 그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모시겠다는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윤 총장은 “정치할 생각없다”고 선을 그었으나 이미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 또한 적지 않다. 그러니 현직 검찰총장을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게 아니겠나. 윤 총장은 부인하고 싶겠으나 선택적 수사를 하는 검찰의 행태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논설위원 hwle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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