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신학, 기독교 교리를 외설적으로 재해석 “동성애는 정당”

국민일보

퀴어 신학, 기독교 교리를 외설적으로 재해석 “동성애는 정당”

이상원 교수의 성경이 경고하는 동성애 ⑥ 퀴어 신학의 이단성 1

입력 2020-02-13 00:06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염안섭 전문위원(왼쪽 두 번째)과 길원평 운영위원장(오른쪽)이 2018년 7월 경기도 과천 법무부청사 앞에서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 폐기를 요구하며 삭발하고 있다. 국민일보DB

교계 내의 동성애주의자들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구원 교리들과 삶의 원리들을 외설적으로 재해석해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것들로 둔갑시키려는 무모하고 독신적(瀆神的)인 시도를 하고 있다. 퀴어 신학(Queer Theology)이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의 핵심교리들과 삶의 원리들에 대한 퀴어 신학의 포르노그래피적인 해석은 어떤 이단 종파도 시도하지 않았던 기괴한 해석으로서, 퀴어 신학이 이단성을 넘어 악마성(惡魔性)에 장악돼 있음을 보여 준다.

퀴어 신학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한 분파로서 현대신학과 목적, 방법론을 공유한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19세기 말 이후에 등장한 신학들 가운데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가 선택한 신학방법론을 따르는 신학을 가리킨다. 슐라이어마허는 현대인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로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워하는 성경의 내용이나 기독교 교리를 자유롭게 폐기하거나 변경시켰다.

성경과 기독교 교리는 동정녀 탄생, 부활, 출애굽 사건, 해가 중천에서 머무른 사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신 사건,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사건 등 초자연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현대인들은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현대인들의 비위에 맞추기 위해 초자연적인 사건들을 신화나 상징으로 처리하거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것들로 재해석 내지 변경시켜 버린다. 그 결과 신학에는 초자연적 요소라는 알맹이는 빠지고 인간들의 생각이라는 껍데기만 앙상하게 남는다.

퀴어 신학은 현대인의 어떤 성향에 아부하면서 이 성향에 맞춰 성경과 기독교 교리를 재해석하려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퀴어라는 형용사에 있다. 영어 단어 퀴어(Queer)는 ‘낯선, 이상한’이라는 뜻이다.

퀴어 신학은 정통 기독교 신학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예수님이 인간이신 동시에 하나님이신 것, 썩어 해체된 몸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 등과 같이 사람들의 눈에 ‘낯설고 이상하게 보이는’ 교리들을 정상적인 진리로 정당화하면서 서술해 왔다고 말한다.

오늘날 주목해야 할 ‘낯설고 이상한’ 것은 무엇일까. 퀴어 신학은 현대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성인식에 주목한다. 인류는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으로만 존재하는 것을 자명한 사실로 간주해 왔다.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성별은 인간이 바꿀 수 없으며, 성적인 욕구는 이성을 향해 느끼도록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성관계는 이성 간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결혼도 이성 간에 이뤄져야 정상적이고 바른 성생활이라 간주해 왔다.

이처럼 이성애와 이성혼을 정상적이고 바른 성관습으로 받아 들여온 사람들에게 낯설고 이상한 주장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인간의 성별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적인 생각과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동성을 향한 성적인 욕구가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으며, 따라서 동성 간의 결혼생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퀴어 신학은 정통신학이 동정녀 탄생, 하나님이신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님, 부활 등과 같은 낯설고 이상한 주제들을 정상적인 진리로 서술해 온 것처럼, 이제는 동성애와 동성혼과 같은 낯설고 이상한 주제들을 정상적인 진리로 서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퀴어 신학은 동정녀 탄생,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 부활, 세례, 성찬, 독신생활, 결혼 등과 같은 기독교의 핵심적·교리적·윤리적 주제들이 동성애와 동성혼이 정상적인 성관습임을 정당화시켜 주고 있음을 보여 주려는 목적으로 이 거룩한 주제들을 포르노그래피적이고 악마적으로 왜곡해 재해석하면서 이게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신학이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정통신학이 기독교 교리들을 ‘낯설고 이상하다’고 말할 때와 동성애와 동성혼을 ‘낯설고 이상하다’고 말할 때는 의미가 판연하게 다르다는 점을 퀴어 신학은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정통신학이 기독교 교리와 삶의 원리가 ‘낯설고 이상하다’고 말할 때는 이것들이 너무나 장엄하고 깊고 높고 거룩해 도저히 인간의 이성이나 이해력으로는 다 파악할 수 없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반면, 동성애와 동성혼을 ‘낯설고 이상하다’고 말할 때는 동성 간의 성관계, 특히 남성 간의 성관계가 생식기관에 배설기관을 접속하는 등 생물학적·의학적으로 볼 때 기괴하고 병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성경과 인류 보편의 도덕적 규범에도 어긋난 것이라는, 극히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기독교 교리와 삶의 원리를 이용해 동성애와 동성혼을 정당화시켜야 한다는 퀴어 신학의 주장은 신학적 궤변이다.


이상원 교수<총신대 조직신학>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