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코로나19의 변종

국민일보

[창] 코로나19의 변종

김철오 스포츠레저부 기자

입력 2020-02-15 04:04

“여기는 산골이라 소문난 맛집이랄 곳은 없고 올갱이국이 기막힙니다. 한술 떠보세요.” 근대5종 국가대표 인터뷰를 위해 지난 3일 경북 문경을 찾아가 대표팀의 훈련 과정을 동행하다 보니 점심 자리까지 동석했다.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세 종목 이상을 훈련하는 대표팀 지도자와 선수들은 오후 2시가 다 돼서야 점심을 먹었다. 이미 끼니를 때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대표팀의 최은종 감독은 기어이 “맛을 보라”며 식사를 권했다.

호의를 마냥 거절할 수 없어 건더기와 국을 크게 한술 뜨고 입에 넣으려는데, 밥상 한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국에서 하루에만 50명 넘게 사망했대.” 숟가락을 입으로 넣기도 전에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밥상에 둘러앉은 10여명이 모두 숟가락질을 멈추고 같은 곳을 바라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야기라면 어느 곳에서든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하철에서 기침 소리만 들려도 여기저기서 몸을 움츠리는 세상이 됐으니까.

코로나19 이야기는 급소를 때린 것 같은 경직을 몰고 온다. 이어지는 이야기들. “치사율이 이렇게 높은 거야? 어떻게 하루에 50명 넘게….” “○번 확진자가 나온 ○○에 친구가 사는데 걱정이네.” “○○○가 오랫동안 준비했던 중국 전지훈련을 취소했대.”

여러 말이 오갈 때 밥상 다른 한쪽에서 “코로나19가 봄까지 잡히지 않으면 올림픽 개최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신종 코로나와 함께 등장하는 올림픽 이야기는 국가대표에게 반갑지 않다. 밥상은 곧 묵직한 정적에 휩싸였다.

그제야 코로나19가 주는 공포의 무게를 체감할 수 있었다. 국가대표는 올림픽 개막이 다가오면 새벽 서리를 맞고 시작한 훈련을 저녁 이슬을 먹으며 끝낸다.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하지 않은 종목의 선수는 국제대회 출전의 강행군을 병행하기도 한다. 수면을 뺀 하루 일정의 대부분이 훈련, 아니면 경기다. 이들에게 식사 시간은 유일하게 긴장을 풀고 여유를 부리는 휴식과 같다. 그 잠깐의 시간이 질병의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로 쓰이고 있다.

근대5종 대표팀 밥상머리에서만 펼쳐지는 풍경이 아니다. 올림픽을 앞둔 스포츠계는 코로나19와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 축구·육상·복싱·배드민턴 같은 올림픽 정식종목의 대륙별 예선은 연기됐고, 행사·전지훈련은 축소됐으며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기성용은 유럽에서 10년 만에 K리그로 돌아오려던 계획이 무산되자 당초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코로나19였다. 국내 복귀 무산에 상심한 기분을 글귀로 적었지만, 그 표정까지 팬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과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지난 9일까지 나흘간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를 개최한 서울 양천구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공항을 방불케 하는 검역과 방역을 시행했다. 모두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에서 관객은 문진표를 작성해 진행요원에게 제출한 뒤 열화상 카메라 앞을 통과해야 장내로 입장할 수 있었다.

손소독제와 마스크도 지급됐다. 유럽을 제외한 아시아·미주·오세아니아·아프리카가 경쟁하는 이 대회에서 관중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선수에게 환호와 갈채를 보냈지만, 그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마스크에 얼굴이 뒤덮여 어색한 풍경이 그려졌다.

코로나19는 결국 정복될 것이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그랬다. 감염병이 지구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지만 승리는 인간의 몫이었다. 문제는 코로나19를 정복하는 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있다. 어느 질병도 완치를 위해서는 힘겨운 투병 과정을 겪게 되기 마련이다. 지금은 그런 과정이다.

투병의 고통만큼 무서운 것은 재난적인 감염병 속에서 자라나는 ‘변종’들이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아시아인을 표적으로 삼는 인종차별, 같은 아시아인 안에서도 중국인만을 골라내 공격하는 배타주의,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를 악용하는 갈등 조장, 사회 질서를 교란하는 허위사실 유포 따위의 것들 말이다. 이런 변종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도 치유하기 어려울 만큼 후유증이 길다. 고약한 변종이니 더 자라기 전에 잘라내야 한다.

김철오 스포츠레저부 기자 kcopd@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