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추미애 장관의 바람막이론

국민일보

[데스크 시각] 추미애 장관의 바람막이론

남혁상 사회부장

입력 2020-02-13 04:01

대통령의 30년 지기이자 해당 지역의 유력인사는 광역시장 선거에 나설 채비를 했다. 그는 선거 전해 그 지역 경찰 최고책임자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상대 당 후보이자 현직 시장에 대한 적극적이고 집중적인 수사를 요청했다. 다음 달엔 캠프 주요 인사가 현직 시장의 비위 첩보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첩보는 청와대에서 정리돼 경찰로 내려왔다. 지역 경찰 최고책임자는 이 수사를 지휘했고, 수사상황은 선거를 전후해 청와대에 21차례 보고됐다.

한편에선 이 유력인사의 공약이 청와대 인사들과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상대 후보 공약에 대한 정부의 심사 결과 발표는 시기를 대폭 늦춰 선거 직전에 이뤄지는 방향으로 언급됐다. 같은 당 경쟁자에겐 다른 ‘좋은 자리’에 대한 제안이 이어졌다.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현직 시장에 대해선 경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됐고, 현직 시장의 주요 공약에 대한 정부 심사 결과(탈락)는 선거일 직전 발표됐다. 1년 가까운 기간에 이런 식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이뤄졌다면 그 선거 결과는 어땠을까.

이 영화 시나리오 같은 상황은 검찰이 2018년 6·13 지방선거 울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을 수사한 결과의 얼개다. 검찰이 전 청와대 인사 등 13명을 기소한 공소장에 그대로 담긴 내용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이런 과정에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반부패비서관실, 국정상황실과 정무수석, 사회정책비서관, 균형발전비서관, 인사비서관이 연관됐다. 경찰 수사 상황은 끊임없이 계속 청와대를 향해 올라갔다.

공소장을 보면 청와대 인사들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한 대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대로라면 명백한 선거개입이고, 공직선거법 위반 행위다. 직전 대통령은 20대 총선에서 공천 개입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됐다.

이런 중대 사건의 공소장 공개를 거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비공개 이유로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사건관계인의 사생활 보호, 피의사실 공표 가능성을 들었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지금부터 고치겠다고 했다. 또 이에 대한 정치적 부담은 자신이 지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판단과 정치적 부담은 굳이 법무부 장관이 질 필요는 없다. 공소장 제출을 명문화한 국회증언감정법의 개정권을 가진 국회가 입법을 하도록 맡기는 게 합당하다. 전직 대통령의 공소장을 정치적 의도에 따라 십분 활용해온 당사자가 이제 와서 잘못된 관행을 언급한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이번 사례만이 아니다. 청와대는 몇몇 사건을 통해 밑바닥을 온전히 드러냈다. 여권 인사의 비리 무마를 위해 민정라인이 총동원됐다. 법원은 이를 법치주의 후퇴, 국가 기능의 공정성 저해로 판단했다.

개인비리와 연관된 청와대 인사는 검찰 출석을 거부했다. 기소 뒤엔 “대가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을 아예 묵살했다. 이 모든 행위에 청와대와 여당, 법무부 장관은 ‘개혁’을 갖다 붙이고 있다.

범죄사실을 기재하는 공소장에는 건조한 사실관계만 나열된다. 하지만 이번 공소장에는 이례적으로 서문이 있다.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언급됐다. 추 장관이 공소장 공개를 거부한 가장 핵심 이유가 이것 때문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추 장관은 지난 11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데 ‘법무부의 바람막이’가 되겠다고 했다. 이것이 법무부를 위한 바람막이인 것인지, 총선을 앞둔 청와대와 여당의 바람막이가 되겠다는 것인지 속뜻이 궁금하다.

남혁상 사회부장 hs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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