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인적 쇄신이 정치 쇄신을 보장할까

국민일보

[국민논단] 인적 쇄신이 정치 쇄신을 보장할까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0-02-18 04:02

사람만 바뀌면 나아질까? 새 사람이 와도 같은 부류라면 변화는 없을 것이다. 설혹 다른 부류의 훨씬 나은 사람이 와도 행동의 기본 규범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오기 힘들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철마다 드는 생각이다. 각 정당은 4년에 한 번 새 인물들을 대거 영입해 공천하며 자당(自黨) 국회의원의 인적 물갈이를 주도한다. 어느 쪽의 인적 쇄신이 더 큰지에 승패가 달린 듯 경쟁한다. 그러나 과연 정당이 단행하는 대규모 인적 쇄신이 국민의 궁극적 목표인 정치 쇄신으로 이어지는지 의구심이 든다.

올해에도 4·15 총선을 앞두고 예외 없이 인적 쇄신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앞장서고 있다. 양쪽의 현역 의원 또는 중량급 원외 인사 중 불출마를 선언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조만간 용퇴 합류자가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아도 결국 공천 과정에서 밀려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공천을 통해 현역 의원의 절반 이상을 물갈이할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양당 내부에서 심심찮게 불거진다. 그만두는 기존 인사들을 대신해 당의 신선한 이미지를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영입하기 위해 양당은 혈안이 되어 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 특히 지금 20대 국회에 대한 불신이 국민 사이에 워낙 팽배한 탓에 각 당은 이처럼 “바꿔~ 바꿔~”를 외쳐대며 표심을 얻으려 한다. 사람을 바꾸면 무언가 나은 변화가 올 거라고 유권자가 인식하기 때문이다. 물론 인적 쇄신을 통해 선거 승리를 기하려는 전략은 정당 이익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잘만 하면 정치체제 전반을 쇄신시키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의원직을 자주 순환시키고 주기적으로 새 인물을 충원함으로써 권력의 부패와 국정의 정체(停滯)를 막고 다양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체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실제보다는 이론상으로만 그런 것 같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공천을 통한 대규모 인적 변화가 집단주의적 정쟁을 더 북돋고 국회 위상을 더 떨어뜨리며 체제 교착을 악화시키고 있다. 새로 영입된 정치 신인들은 자생력을 키워 상향식으로 의원직을 차지하기보다 당 지도부나 계파의 도움을 받아 위로부터 내리꽂히는 경향이 크다.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거나 감동적 인생 역정을 밟아 지명도가 높지만 정치와 별 상관없던 사람을 갑자기 선거판에 불러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독자적 정치 기반이 없고 정치 경험이 일천한 데다 당 지도부에 신세를 졌기 때문에 당에 맹종할 수밖에 없다. 정당 간 경직된 집단주의적 대결의 편리한 도구로 전락하기 쉬운 것이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 구태인 과도한 정쟁과 정파적 교착이 정치 신인들에 의해 되풀이되고 강화된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국회의 초선 의원 비율은 무척 높다. 2000년대 선거만 봐도 16대 41%, 17대 63%, 18대 45%, 19대 49%, 현 20대 44%로 초선이 대거 당선됐다. 이 수치는 민주주의 국가들을 비교학적으로 볼 때 매우 높은 편이다. 이처럼 매번 상당한 인적 변화가 있었음에도 국회의 현실은 암담함을 면치 못해 왔다. 암담한 현실의 이면에 하향식으로 영입돼 독자성을 갖추지 못한 정치 초년생들도 서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언제까지 사람만 바뀌면 뭔가 좋아지겠지 하는 헛꿈을 반복할 것인가.

정작 중요한 것은 정치 쇄신이다. 정치 쇄신의 의미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정당 간 과도한 집단주의 대결과 교착을 완화하는 것이 그 핵심 부분일 것이다. 이를 위해선 덜 새롭더라도 나름의 독자성을 지키며 집단주의적 기율에 맹종하지 않는 노련한 의원들도 필요하다. 수단일 뿐인 인적 쇄신을 위해 궁극적 목표인 정치 쇄신을 희생시켜선 곤란하다. 어느 조직이나 신구(新舊)의 균형과 조화가 있어야 건전한 발전을 기할 수 있듯 국회와 정당들도 새 인물과 경험 많은 인물이 적절히 섞여 있어야 국정 주역으로서 위상을 지키며 정치 쇄신을 이끌 수 있다.

이제는 선거 승리뿐 아니라 선거 후 정치 쇄신도 고려하는 각 당의 거시적 관점과 장기적 호흡이 필요하다. 또한 무조건 새것만 바라기보다 조화의 묘를 존중하는 유권자의 인식 전환도 요구된다. 인적 쇄신이 낡은 기존 정치를 고착시키는 인적 교체로 변질돼서야 되겠는가.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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