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봉준호와 CJ, 탁월함의 공진화

국민일보

[경제시평] 봉준호와 CJ, 탁월함의 공진화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입력 2020-02-18 04:05

필자는 영화광인 동료 교수들과 한국 영화산업의 급성장에 대한 대규모 연구를 진행 중이다. 온 가족이 영화팬이었던 필자는 초등학교 입학 전인 60년대 중반부터 거의 매일 밤 AFKN 채널에서 외화를 시청했다. 대부분 할리우드 고전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모든 채널에서 소수 블록버스터 이외에는 대부분 한국 영화를 방영하고, 우리 청소년들은 할리우드 스타보다 정우성이나 강동원에 열광한다. 이런 추세는 90년대 말 시작됐는데 그때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 등 세계적 감독들이 동시에 등장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지배해온 지난 20년간 자국 영화가 시장을 주도하고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가졌던 나라는 미국 말고는 우리밖에 없다. 세계 영화계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던 한국 영화의 급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해답은 공진화(共進化)에 있다. 봉준호는 분명 출중한 명감독이지만 한 사람의 재능만으로 오스카 수상작이 탄생한 것은 아니다. 뛰어난 제작자와 스태프, 시스템, 기술, 자본, 제도적 기반 등 여러 요소가 서로 자극하며 함께 세계적 수준으로 공진화한 덕분에 가능했다. 80년대 중반 영화아카데미 창립과 운동권 영화동아리 출신 고학력 인재들의 진출, 90년대 중반 기업들의 투자와 제작비 급증 등 다양한 요소들 간 공진화가 한국 영화 황금기를 거쳐 오스카 수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봉준호가 시상식에서 혼자 힘이 아닌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라고 말한 것은 공진화를 의미한다.

공진화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돼온 것이 기업들의 기여다. 90년대 중반부터 CJ, 삼성, 롯데, 벤처기업들이 영화계에 진출했는데 그중 핵심은 단연 CJ다. 영화가 다양한 사업 중 하나였던 롯데나 삼성, 그리고 수익에 집중했던 벤처와 달리 CJ는 영화 등 문화 콘텐츠가 핵심 사업이다. 90년대 중반 이재현 회장이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으로 회사의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면서 CJ는 문화산업에 지속해서 투자해 왔다. CJ의 경영철학은 최고와 온리원(Only One)을 추구하는 제일주의이므로 핵심 사업인 영화에서는 수익성보다 글로벌 최고의 탁월함을 강조한다. 1995년 스필버그를 중심으로 할리우드 최고 엘리트들이 드림웍스를 창업할 때 CJ가 최대 주주 중 하나로 참여한 것은 탁월함의 기준이 글로벌 최고라는 것을 의미한다.

‘기생충’ 책임프로듀서인 CJ 이미경 부회장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봉준호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듯 CJ와 봉준호는 ‘케미’가 잘 맞는데 각자의 역할에서 세계 최고의 탁월함을 추구하는 공통점 때문이다. CJ의 제일주의와 일맥상통하게 봉준호 영화의 핵심 특징은 영화의 모든 면에서 극단적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주제의 깊이는 물론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시사하듯 배경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생생한 존재로 표현하는 극단적 완벽성과 치밀함을 보여준다. ‘기생충’이라는 탁월한 영화가 만들어지자 오스카 수상을 위한 작업이 CJ에 의해 탁월하게 기획되고 실행되었다. 봉준호가 선거 캠페인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전업 영화인들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CJ는 극도로 치밀한 계획이 다 있었고, 수백 번이 넘는 인터뷰와 방송 출연 등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며 ‘기생충’의 탁월함을 세계 영화계에 알렸다.

오스카 쾌거는 봉준호와 CJ는 물론 기획부터 제작, 배급, 홍보, 그리고 통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참여자 간 탁월함의 공진화가 만들어낸 결과다. 우리 사회 리더들은 영화뿐 아니라 위대한 기업이나 나라도 소수의 재능이 아닌 탁월함의 공진화를 통해 탄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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