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사회적 면역력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사회적 면역력

입력 2020-02-21 04:01

우한교민·마스크·자영업 등 코로나19가 유발한 사회문제
우리 몸이 면역체계 가동하듯 공동체의 힘으로 맞서온 상황

대구·경북 바이러스 확산에 사회적 면역체계 균열 드러나
내 부주의가 공동체 면역력 훼손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들어온 지 한 달이 됐다. 낯선 감염병(코로나19)은 한국 사회에 여러 풍경을 빚어냈다. 그것은 바이러스의 움직임에 따라 바뀌었는데 한 달쯤 지나니 어떤 패턴이 보이는 듯하다. 사람의 몸은 병원균 등 이물질이 침투하면 염증의 형태로 반응하고 면역체계를 가동해 싸움을 시작한다. 면역력이 강하면 염증이 가라앉고 약하면 다시 불거지는 양상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닮았다. 지난 한 달간 우리 공동체가 겪은 몇 가지 일도 그랬다.

#우한 교민. 코로나19의 발원지에서 사망자가 속출했고 그곳에 많은 한국인이 있었다. 그들을 데려오기로 결정한 건 바이러스가 한국에까지 건너와 퍼지기 시작할 때였다. 바이러스와 함께 들어온 공포에 우리가 반응한 방식은 그들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격리 장소로 택한 아산과 진천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님비(NIMBY)의 형태로 염증이 불거지자 ‘우리가 아산이다’ 캠페인이 시작됐다. 많은 시민이 우한 교민을 향해 “여기서 편히 쉬다 가시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공포라는 이물질에 맞서 공동체의 면역체계가 가동된 듯했다. 그 면역력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져서 3차 입국 교민이 이천에 도착했을 때는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마스크. 일상의 필수품이 되면서 몸값이 뛰었다. 탐욕이 고개를 들었다. 하루 1000만장 넘게 생산되는데 온라인에선 결제한 구매도 번번이 취소되고 매장마다 품절 안내문이 붙었다. 무려 100만장을 빼돌린 생산업체 직원이 있었고, 곰팡이 마스크를 유통시킨 업자가 있었고, 비싸게 팔려고 재고를 쌓아놓은 업체가 많았다. 저소득층은 마스크 비용이 부담스러워 방역양극화란 말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기부와 나눔이 시작됐다. 익명의 제주시민이 마스크 1만5000장을 사회복지협의회에 전달했다. 마스크 공급을 위해 1억원을 내놓겠다는 편지가 여주시청에 배달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300장쯤 있는데 30장씩 여덟 분께 드릴게요” 하는 식으로 미리 사둔 마스크를 나눠 쓰자는 글이 올라온다. 100만장을 원가에 납품한 생산업체, 10만장을 무상 기탁한 업체, 7000장을 기부한 연예인…. 정부의 수급관리 조치와 이런 움직임이 맞물려 탐욕을 제어해가고 있다.

#자영업. 대통령에게 “경기가 거지 같다”고 하소연한 반찬가게 주인의 말처럼 상인들은 소비 위축의 직격탄을 맞았다. 철없는 이들이 그의 말투를 문제 삼아 철없는 소리를 해댔지만 다른 쪽에선 자영업자의 눈물을 소리 없이 보듬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난 13일 전주 한옥마을 건물주 14명이 ‘3개월간 10% 이상’ 임대료를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전주의 전통시장과 구도심으로 점차 확산됐고 마침내 시 경계선을 넘어섰다. 김포시장은 17일 “익명을 원한 장기동의 한 건물주가 임차인들의 임대료를 월 100만원씩 인하했다”고 알렸다. 수원에서도 전통시장 등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불황의 무게가 너무 커 충분한 처방이 될 순 없겠지만 정부는 희망의 작은 씨앗이라도 살리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 사회에 침투한 코로나19는 이렇게 공포와 탐욕과 불황이란 이물질을 들여왔다. 이는 님비 현상과 마스크 대란과 자영업자 고통의 형태로 염증을 일으켰는데, 각각에 맞서는 면역체계가 가동돼 이물질을 몰아냈거나 싸우고 있다. 사람들의 공동체는 사람의 몸을 닮아서 스스로 치유하는 기능을 가졌다. 건강한 공동체일수록 면역력이 튼튼할 테고 이물질이 고약할수록 면역체계가 위축될 것이다. 2번 확진자는 모범 감염자였다. 중국에서 입국할 때 능동감시 대상자로만 분류돼 외부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자가격리를 하다가 증상이 나타나자 보건소에 신고했다. 확진 후 접촉자 파악이 아주 쉬웠고 2차 감염도 없었다. 반면 31번 환자는 증상이 있는데 검사를 거부한 채 돌아다녀 슈퍼 전파를 일으켰다. 조심하고 경계하던 초기의 분위기가 한동안 소강상태를 거치며 느슨해져 공동체의 면역체계에 균열이 생긴 결과일 수 있다.

한국 사회와 코로나19의 공방전은 바이러스가 우세한 사이클로 접어들었다.이제 공포가 다시 활성화해 사회를 잠식하려 들 것이다. 님비를 낳았던 공포보다 실체가 뚜렷해 더 고약한 염증을 일으킬지 모른다. 내 작은 부주의가 공동체에 치명적일 수 있음을 인식하면서 침착하게, 또 신속하게 사회적 면역력을 회복해야 한다.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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