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정권의 위기관리 능력 믿을 수 있나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정권의 위기관리 능력 믿을 수 있나

입력 2020-02-24 04:01

대통령의 종식 발언과 초기의 차단 실패는 위기관리에 허점 보여준 것…
정치의 과잉이 의학과 과학을 눌렀기 때문

국가 위기관리에 실패하면 총선이고 재집권이고 없어
정치와 이념에 오염되지 않은 전문가 권고를 들어야


코로나19가 대한민국 상황을 위기 속으로 밀어넣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전문가 권고에 따라 위기단계를 ‘심각’으로 올렸다고 선언했다. 지난 주말 이후로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났고, 사망자 발생 건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는 한국을 코로나19 위험 국가로 인식, 규제하기 시작했다. 국내 확진자가 전국에서 나타나고 감염 경로도 확실치 않은 사례가 많아 공포가 서서히 사람들을 짓누르는 것도 위기가 심각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급격한 확진자 증가는 정통 기독교 교단들이 이단으로 규정한 신천지 종교집단의 기이한 종교활동과 폐쇄성, 어이없는 비협조가 치명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공동체에 해악을 범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골고루 퍼진 이 부정적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 현재로선 가늠할 수 없는 게 위기 본질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물론 확진자가 빨리 늘어나는 건 다른 나라보다 짧은 시간 내에 검진·판정을 할 수 있는 앞선 의료체계·기술 때문이기도 하다.

외부 시각은 위기 상황을 더욱 실감케 한다. 23일(한국시간) 이스라엘은 최초로 한국 여행금지 조치를 했다. 이날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관광객들은 입국금지를 당해 공항에 격리돼 있다 2시간 만에 강제 출국했다. 현재 이스라엘에 머무는 1600명 한국인 관광객들은 14일 동안 호텔 등에서 자가격리될 예정이다. 고강도 조치다.

미국은 이틀 전 한국과 일본 여행경보를 기존 1단계에서 2단계로 높였다. 여행금지는 아니지만 코로나19 환자와 접촉 위험성이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라는 뜻이다. 태국은 한국행 항공기를 일부 취소했다.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따라 여행 자제 등 자국민을 상대로 경고 등급을 높이고 한국인 입국을 극도로 경계하는 나라들이 10개국 이상으로 늘었다.

정권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에 따르면 위기 발생 시 Assess(위기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직한 평가), Control(위기 확산을 신속하게 통제), Review(위기 검토 및 대응책 개발) 등을 거치면서 관리 주체가 각 단계에서 매뉴얼대로 상황 관리를 잘해야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초기단계에서 ‘객관적이고 정직한 평가’에 실패했다. 그건 문 대통령의 “머지않아 종식”(13일) 발언에서 드러났다. 불과 닷새 뒤(18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종식으로 간다고 판단하지 않고 두 번째 충격이 오는 과도기”라고 판단했다. 13일쯤은 바이러스 잠복기를 고려했어야 했던 시기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아주 많다. 대통령의 발언은 경솔했고, 이는 청와대 참모들의 위기관리 능력의 구멍을 그대로 보여줬다.

‘위기 확산을 신속하게 통제’하는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의료전문가들은 우한 등을 거친 사람들에 대한 입국 금지를 진작 주장했다. 대통령과 청와대로선 외교 관계 등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요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건 과학과 방역의 문제다. 이 요소보다 정치가 더 우위여서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도 이미 있었다. 신속하게 통제하지 못한 것이다.

위 두 가지 실패는 386운동권 정권의 정치 과잉에 있다. 총선을 앞두고 다른 건 보이지 않고 오로지 선거 승리, 재집권에만 모든 정책과 행동이 집중돼 있기 때문은 아닌가. 대통령의 종식 발언 직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나 이인영 원내대표, 추미애 장관 등이 ‘방역 모범생’으로 치켜세우는 데 몰두했다. 마치 원전 사태와 흐름이 비슷하다. 그러니 방역 위기관리에서 선뜻 신뢰가 가지 않는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나 의사 간호사들의 분투가 말만 갖고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헛되이 끝나선 안 된다.

지금부터는 ‘위기 검토 및 대응책 개발’에 진력할 때다. 대통령은 ‘정치 청와대’는 잠시 접어두고 정치와 이념에 오염되지 않은 의료·방역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보다 총선이 먼저일 수는 없다. 치명적 바이러스보다 재집권이 먼저여서는 안 된다. 지금은 방역과 의학적 권고가 다른 어떤 요소보다 압도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국가 위기관리에 실패하면 총선이고 뭐고 없다. “곤란과 장애물은 언제나 새로운 힘의 근원”(버트런드 러셀)이라는 말을 새기면서 코로나19 재난을 극복해야 한다.

편집인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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