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균형 감각

국민일보

[너섬情談] 균형 감각

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입력 2020-02-26 04:06

몇 년 전 수업 중에 균형을 잃고 쓰러진 적이 있다. 나는 의자에 앉아 한 학생의 발표를 듣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식은땀이 나면서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눈앞의 사물들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돌면서 뒤집어지려 하고 강의실 전부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 몸이 뒤집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그 동작 때문에 내 몸은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책상을 꼭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책상과 함께 넘어졌다. 꽈당 소리에 놀란 학생들이 달려오고 수업은 중단되었다.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사태의 전말이 어떠한지 그때 나는 몸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일종의 오작동이었다. 사물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내 감각기관이 착각을 해서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내가 있는 공간이 어떤 방향으로 돈다는 잘못된 신호를 받을 때 몸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반대쪽으로 중심을 옮기게 되고, 그러면 쓰러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기울어지는 세상에 중심을 잡으려고 그런 행동을 하지만, 사실 세상은 기울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으므로 나 혼자 무너진다. 세상은 흔들리지 않는데 세상이 흔들린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다. 자기의 균형 감각에 이상이 생긴 줄은 모르고 세상이 균형을 잃었다고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그리하여 중심을 잡으려는 시도가 중심을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균형 감각을 잃은 상태에서는 중심을 잡을 수 없다. 그럴 때는 차라리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중심을 잡으려 할수록 중심을 잃게 되고 몸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뒤집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아무 시도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균형 감각을 잃은 사람은 자신의 감각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즉 세계에 중심을 잡아주려고 나름대로 갖은 애를 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한다.

분별력은 사물을 구별하고 이치를 판단하는 능력을 이른다. 균형 감각은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감각을 말한다. 이쪽에서 잘못이라고 평가한 일은 저쪽에서도 잘못이라고 평가하고 여기서 옳다고 판단한 일은 저기서도 옳다고 판단하는 것이 균형 감각이다. 균형 감각이 없는 사람은 균형을 잡을 줄 모른다. 그래서 이쪽에서 하는 판단과 저쪽에서 하는 판단이 일치하지 않는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람은 자신의 균형 감각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가 받은 신호가 거짓이고 착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신호가 거짓이고 착각이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교리를 맹신하는 광신도들이나 비상식적인 신념에 사로잡힌 추종자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터무니와 상식에 승복하지 않는다. 어떤 터무니와 상식을 들이대도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 확신에 대한 이들의 믿음은 누구보다 강하다. 이들은 잘못했다는 판단을 절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잘못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나치다는 분별이 없기 때문에 도를 넘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자기들이 옳고 바르다는 믿음이 충만하기 때문에 자기들의 옳고 바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의사는 나에게 허혈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신체 조직으로 피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은 상태를 허혈이라고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뇌에 피가 덜 공급되면 일시적으로 뇌의 작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거나 가만히 서 있는데도 한쪽으로 넘어질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즉 균형 감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개선을 위한 첫걸음은 허혈을 인정하는 것이다. 혹시 잘못된 신호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를 의심해 보는 것이다.

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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