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요양·의료시스템 공백 현실화… 치매 가족 “우리 엄마 어떡해요”

국민일보

[이슈&탐사] 요양·의료시스템 공백 현실화… 치매 가족 “우리 엄마 어떡해요”

대구 시민들의 위태로운 일상

입력 2020-02-25 18:37 수정 2020-02-25 19:04
대구시 서구보건소 출입문이 25일 굳게 닫혀 있다. 서구보건소 직원 4명이 코로나19 확진을 받으면서 선별진료소 운영 등 모든 업무가 중단됐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덮친 대구에서 요양과 의료 시스템 공백이 현실화되고 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응급 환자들이 속출하는 등 시민의 일상은 위태로워졌다. 중증 치매환자 등 기관 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노인돌봄이 가족 자체돌봄 형태로 바뀌면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시민들도 많아졌다.

대구는 지난 24일 관내 1103곳 장기요양기관(주야간보호, 단기보호)에 임시 휴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가족들이 자체적으로 노인을 돌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돌봄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근무 인원을 최소화해 시설을 운영토록 했다. 전날에만 10개소가 휴원했고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노인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지만, 당장 부모를 요양할 수 없는 가족들은 난감해했다. 특히 치매 노인 등 절대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경우 가족 돌봄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대구 서구의 한 노인복지센터 원장 A씨는 2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공문이 내려온 뒤에 보호자들에게 휴원 방침을 전하려 전화를 돌렸는데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부모를 보내야 한다’며 휴원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휴원을 해버리면 어르신들이 스스로 밥을 해먹지도 못해 굶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감염 우려가 있어도 시설에 보낼 수밖에 없는 자식들의 심경은 복잡했다. “도저히 우리 엄마를 돌볼 수가 없어요. 시설에 보낼 수도 없고…. 어떡하죠”. 대구 달서구의 한 노인보호센터 원장 B씨는 이날 중증 치매환자 보호자로부터 이 같은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주말부터 가정 보호를 시작했는데 사흘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B씨가 운영하는 센터에 오는 어르신들은 총 40명, 평균 나이는 85세다. 대부분 치매를 앓고 있어서 혼자서는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B씨는 “‘원장님, 나 못하겠어요’라는 보호자 전화를 이날 하루에만 여러 통 받았다”며 “자식들이 함께 사는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가정 돌봄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긴급 의료행위 공백도 현실화되고 있다. 대구에 사는 김모(31)씨는 코로나19로 주요 병원 응급실이 폐쇄되면서 딸아이 치료시기를 놓칠 뻔했다고 토로했다. 다섯 살인 김씨의 딸은 지난 22일 저녁 집 현관문에 손이 끼는 사고를 당했다. 119에 전화를 하고 부랴부랴 대구파티마병원으로 향했지만 당시 파티마병원 응급실은 폐쇄 직전인 상황이었다. 응급실을 다녀간 환자가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병원은 “봉합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지금 여기선 불가능하다”고 했다.

경북대, 칠곡경북대, 영남대 응급실에 급히 연락을 돌렸지만 역시 코로나19 여파로 ‘안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김씨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폐쇄됐던 다른 병원에서 응급환자는 받을 수 있다고 해 아이를 데려갔다. 딸의 손가락이 골절된 데다 밤새도록 지혈이 안 되는 등 상태가 심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로 어린 딸에게 장애가 생길 뻔했다. 교통사고나 다른 불의의 사고로 더 크게 다친 사람들은 어떻게 됐겠느냐”고 했다.

대구에서 음식점 여러 곳을 운영 중인 30대 김모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자 매출이 급락했고, 가게를 임시휴업했다. 빚이 커졌다. 그는 “당장 나가야 하는 월세와 기존 대출 원리금 등이 필요해 대출을 알아보려 했지만 모두 부결됐다”고 염려했다.

일상이 무너지는 현장은 범위를 넓히고 있다. 창원의 한 맘카페에는 병원 폐쇄 때문에 출산할 병원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 임산부들의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38주차 임산부인 C씨는 한마음창원병원을 다녔는데 얼마 전 이곳에서 의료진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C씨는 “보건소에 연락했더니 산모가 직접 병원을 알아봐야 한다고 한다. 다른 병원에 물어보니 ‘출산 임박이라 못 받아준다’고 한다. 곧 진통이 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우려했다.

김유나 임주언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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