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감염병 퇴치 전면에 나선 지방정부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 감염병 퇴치 전면에 나선 지방정부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입력 2020-02-27 04:03

2015년 6월 4일 밤 12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심야 기자회견을 했다. 출입기자들은 황당해 했고 너무 튀는 행동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박 시장은 메르스 증상이 의심되는 의사가 1500여명이 모인 대규모 행사장에 들렀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행사 참석자들의 가택 격리 요청과 전화 밀착 관찰 등 지역사회 감염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시민들은 당시 중앙정부가 메르스 확진자 동선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며 박 시장의 단호한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감염병 공포가 또다시 우리 사회를 엄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불안으로 온 국민이 떨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수백명씩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는 형국이다. 중앙정부도 코로나19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바이러스가 지역사회로 전파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전국이 사정권에 들면서 지역사회 감염의 급격한 확산을 조기 차단하는 것이 이번 사태 해결의 관건이 됐다.

무엇보다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전국 동시다발로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중앙정부 지침만 기다리고 있을 게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성에 맞게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3일 “지자체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지자체의 방역 역량을 적극적으로 발휘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자체가 가진 모든 권한을 행사해 감염 확산 요인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경기도가 25일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로 지목된 신천지 시설에 강제 진입해 역학조사를 하고 서울시가 신천지 시설 강제폐쇄, 집회 전면금지의 긴급행정명령을 발동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중앙정부와 경찰이 강제 집행에 나서기를 주저할 때 지자체가 대규모 행정력을 동원해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이다. 신천지가 뒤늦게 21만2000명의 신도 명단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제출했지만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신천지 측이 제공하는 자료에만 의존해서는 확실한 방역을 할 수 없다. 성남시 한 확진자는 대구집회에 참석했지만, 신천지가 밝힌 신도 명단에는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신천지의 비밀주의는 상식을 넘어선다. 시민들은 과잉대응일지라도 당국이 강제력을 동원해 신천지의 집회장소와 신도들의 동선을 정확하게 파악해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 단위의 민·관 협력과 주민 협조도 절실하다. 박성수 송파구청장과 서대원 송파구의사회장이 25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함께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은 모범적인 사례다. 신천지의 숨은 집회 장소와 시설들을 찾아내 당국에 적극 신고하는 시민의식도 요구된다. 신종 감염병 발생에 대비해 지방정부 역할을 확대하는 법·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기초지자체에 역학조사관 운영 권한을 부여하는 게 대표적이다.

감염병 대처에는 의료인들의 조언과 현장 요구가 중요하다. 전국의 방역 업무는 대부분 지방정부가 맡고 있다. 박 서울시장은 25일 보건소장 영상회의에서 “현장에서의 촘촘한 방역망과 현장의 책임성이 결국 시민의 건강과 안전, 생명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이번 주가 코로나19와의 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전국 각지에서 감염병 퇴치를 위해 연일 수고하고 있는 공무원들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김재중 사회2부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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