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진짜 위기가 오고 있다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진짜 위기가 오고 있다

한장희 산업부장

입력 2020-02-27 04:04

감염병 공포는 매번 우리 경제를 위협했지만, 그 영향력은 한 분기를 넘기지 못했다. 과거 메르스, 사스가 확산됐던 분기에 성장률이 크게 떨어졌지만 바로 다음 분기에 반등했다. 미뤘던 소비·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진 결과다. 하지만 코로나19 충격파는 한 분기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연 성장률 2.0%에 간신히 턱걸이할 정도로 경제 체력이 약해져 있고, 무역 흑자를 안겨주던 중국 경제도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 휘청이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훼손된 게 우려스럽다.

돌아보자. 국정농단 사태 하나가 촛불혁명을 불러온 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역사 교과서 사태, 위안부 합의 등을 거치며 누적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국정농단 사태로 절정을 맞은 것이다. 새 정부 들어 바로 신뢰가 회복된 것도 아니었다. ‘쇼’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과거 정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고, 대통령이 ‘강원도 산불’ 등 수습을 진두지휘하는 성과들이 쌓여 믿음은 서서히 커졌다.

어렵게 다시 쌓인 신뢰는 국론분열을 초래한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국민 안전’ 관련 정부 대응에 대한 믿음은 굳건했다. “한국은 모든 것을 닦는다”며 코로나19 방역 시스템을 극찬한 외신 보도에 으쓱해진 몇몇은 헛발질하는 일본 아베정부를 향해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앞에 닥친 선거가 문제였다. ‘민주당만 빼고’ 칼럼 사태에 들끓던 민심이 잦아들 무렵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 전문가의 의견이 아닌 총선 조바심이 만들어낸 이 메시지는 며칠 후 유령도시처럼 텅 빈 대구 도심의 사진 한 장에 무색해졌다. 여기에 여당 대변인의 사려 깊지 못한 ‘봉쇄’ 발언은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대구 이마트 앞에 끝없이 늘어선 시민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경제활동을 이기심의 발로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게 빵집 사장이나 푸줏간 주인의 자비 덕분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한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제어되지 않는 이기심은 경제주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불거진 악재에 예·적금을 모두 빼내려는 ‘뱅크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은행뿐 아니라 경제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 정부는 은행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해 경제주체들의 이기심을 자제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모두 정부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에 대한 믿음이 크게 훼손됐다. 정부 정책의 약발도 떨어질 수 있다. 복지 확대로 소비 여력을 늘려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 구상도 완전히 엉클어질 수 있다. 정부를 못 믿고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국민들이 저축만 늘린 결과 일본이 30년 불황을 겪은 것처럼 우리 경제도 ‘잃어버린 시대’에 빠져들 수 있다.

물론 아직 기회는 있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지만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선 벌어진다. 식재료를 버려야 할 지경에 이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소개한 SNS 글에 대구시민들이 나선 뒤 먹자골목 상가에 매진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 달 월세 전액을 파격 지원하는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하는가 하면 임대료를 절반만 받겠다는 착한 건물주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

결론은 나왔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촉구는 당분간 접어두고 ‘4주 안에 대구의 위기 상황을 안정시키겠다’는 말을 지키는 데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정부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진짜 위기가 온다.

한장희 산업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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