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대한민국이 이것밖에 안 되는 나라였나”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대한민국이 이것밖에 안 되는 나라였나”

입력 2020-03-02 04:01

코로나19가 소환한 각자도생 이면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짙게 깔려 있어
뒷북대응과 불통·무능 때문에 온 국민이 불안과 공포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지 않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소환했다. 남녀노소 동서남북 가릴 것 없이 감염자들이 급증하고 의료체계마저 휘청거리고 있으니, 정부에 더 이상 기대지 말고 개개인이 조심하는 게 최선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는 일상이 됐다. 전국이 뚫렸다. 무증상 감염마저 확인됐다. ‘나도 언제든 바이러스의 숙주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을 떨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움츠려든 일상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이동경로가 짧아지고 소비가 줄어 대형 유통업체는 물론 자영업자들이 울상이다. 구조조정에 들어가거나 폐업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관광업계는 부도 위기다. 산업계도 비상이다.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등 빨간불이 켜졌다.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의 시선마저 차가워졌다. 이른바 ‘코리아 포비아’다. 예고도 없이 한국인들의 입국을 불허하거나 강제 격리시키는 국가들까지 생겼다. 한국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한 나라와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한 나라들이 70개국을 넘어섰다. 많은 국가들이 한국으로부터의 코로나바이러스 유입 가능성을 우려해 봉쇄에 나선 것이다. 재외동포들까지 현지인들로부터 냉대를 받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외교 당국은 속수무책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불안과 공포는 불만과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라는 데서 시작된 의문은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초기에 좀 더 강도 높게 대처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중국의 우방으로 분류되는 북한과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멀리 떨어진 나라들도 중국인 입국 금지라는 초강수를 뒀는데, 우리 정부만 느슨하게 대응한 까닭은 뭘까. 과학적 근거도 없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거나 대한민국은 철통방어라고 자랑했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이었나. 정부의 어정쩡한 대응 때문에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걸 가래로도 막기 버거운 사태가 초래된 건 아닐까’ 등등. 이렇듯 ‘각자도생’의 이면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스멀스멀 번지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사태 초기인 지난 1월 30일 “선제적 예방조치는 빠를수록 좋고, 과하다 싶을 만큼 강력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이후 정부의 조치들을 보면 ‘과하다 싶은 만큼 강력한’ 것이 없다. 코로나19 진원지인 중국 후베이성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입국을 제한하는 조치만 취했을 뿐이다. 그것도 선제적이지 못했다. 중국인 입국 금지나 제한을 주문하면 ‘혐중(嫌中)’으로 몰아붙였다.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것도 뒷북대응이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데 정부는 왜 ‘심각’ 단계 발령을 주저하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부랴부랴 결정했다. 안 한 것보다는 낫지만, 영 미덥지 못하다.

중국 눈치보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중국 곳곳에서 되레 한국인들에 대해 격리나 입국 제한조치를 취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나 정부는 중국정부 차원의 조치가 아니라며 거의 방관하고 있다. 중국 언론매체들이 한국의 의료체계를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기사를 내보내도 침묵한다. 중국의 어려움이 진짜 우리의 어려움이 됐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올 상반기 방한 계획에 대한 미련은 여전하다.

문 대통령과 여권 관계자들은 요즘도 “정부를 믿어 달라”고 말한다. 정부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병원에 가보지도 못한 채 자택에서 대기하다가 귀중한 목숨을 잃는 황당하고 허탈한 일까지 생겼다. 비록 일부의 외국인들이겠지만 ‘코리아’를 ‘코로나’로 부르고 있다. 3만 달러 시대라지만, 정부는 마스크조차 제때 공급하지 못하고 서민들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수백m나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합니다’라는 국민청원 서명자가 140만명을 넘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정부의 불통과 무능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의미다.

얼마 전, 시장 상인이 문 대통령에게 “거지 같아요”라고 말했다가 문팬들로부터 봉변을 당한 적이 있다. 지금 그 상인의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것밖에 안 되는 나라였나. 나라 꼴이 이게 뭔가. 정말, 거지 같다.’

김진홍 대기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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