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재난 가운데 보이는 희망

국민일보

[신종수 칼럼] 재난 가운데 보이는 희망

입력 2020-03-04 04:01

코로나 극복 위한 의료진의 눈물겨운 헌신이 파장 일으켜
시민들도 공동체 생각하며 연대와 나눔 시도
서로 손잡고 아픔 나누는 한 바이러스 반드시 이겨낼 것


대구시의사회 회장이 쓴 호소문을 다시 읽어본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직후인 지난달 25일 5700여명의 동료 의사들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낸 글이다. 그는 싸움터로 향하는 의병처럼 “질병과의 힘든 싸움에서 최전선의 전사로 분연히 일어서자”며 “응급실이건 격리병원이건 각자 불퇴전의 용기로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자”고 호소했다. “이 위기에 단 한 푼의 대가, 한마디의 칭찬도 바라지 말고 피와 땀과 눈물로 시민들을 구하자”고 외치는 대목은 가슴을 찡하게 한다. “일과를 마친 의사 동료 여러분은 선별진료소, 격리병동, 응급실로 달려와 달라”고 부탁한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휴가를 내고 재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의 호소는 힘이 있고 파장이 컸다. “저도 두렵고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라면서도 바이러스가 들끓는 현장에 먼저 뛰어들었기에 더욱 그랬다.

호소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250여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지원한 의료 인력이 1000명가량 된다. 20, 30대에서 60, 7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퇴직한 의료인들의 자원봉사 신청도 있다.

대구시의사회 소속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의사들이 움직였다. 어떤 의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 문을 닫고, 어떤 의사는 퇴근 후에 재난 현장으로 갔다. 광주시의사회는 ‘달빛(달구벌과 빛고을) 의료지원단’과 성금을 보냈다. 광주 시민사회는 대구 확진 환자들을 광주로 이송해 치료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1980년 5월 고립됐던 광주가 결코 외롭지 않았던 것은 수많은 연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우리가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대구에서는 의사들뿐만 아니라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 많은 의료진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전신방호복과 보호경에 장갑 두 장을 끼고 환자들을 치료하거나 간병인 역할까지 하다보면 1시간도 안 돼 속옷은 물론 양말까지 땀에 젖는다고 한다. 휴일도 없이 일하거나 집에 가지 못하고 병원 한쪽에서 잠을 잔다. 어떤 의사는 환자를 돌보다 실신한 뒤 깨어나 다시 환자를 돌봤다. 공무원과 민간 자원봉사자들의 헌신도 이어지고 있다. 확진자 번호가 의미 없을 정도로 환자들이 밀려들고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도 모를 한계 상황 속에서 이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버티고 있다. 재난 속에서 같이 아파하고 연대하는 것을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국 사태로 갈등과 대립이 심했던 우리 사회가 코로나 사태를 맞아 서로 위로하며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이다.

재난을 이기는 힘은 분명 여기서 나올 것이다. 대구에서 목격되는 수많은 헌신들을 보면서 시민들도 먹고살기에 바빠 잊고 지내던 이웃과 공동체를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갖는다. 시민들은 의료진에게 도시락과 물, 홍삼, 우유 등은 물론 양말까지 보내준다. 병원에는 이들이 보내준 택배가 속속 도착하고 있다. 기초생활 급여로 생계를 잇는 지체장애인이 암보험을 깨 마련한 돈 118만7360원을 성금으로 내놓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충북 괴산의 어떤 농민은 손때 묻은 만원짜리 100장을 면사무소에 놓고 갔다. 이런 격려와 사랑에 의료진은 울컥하고 다시 힘을 낸다. 상가 건물 주인들은 세입자들로부터 임대료를 아예 받지 않거나 깎아준다. 대구의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외지에서 트렁크를 끌고 온 의료진이 마땅히 묵을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고 무료로 방을 내준다. 재난 현장이 공동체를 더 깊이 생각해 보는 학습장으로 전환되는 순간들이다. 확산되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맞서 공동체 DNA가 퍼지고 있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여전히 갈등과 대립, 정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지탱해 가는 힘이 이번에 다시 확인됐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대구에서 의료 봉사를 하는 모습이 비교적 긍정 평가를 받는 것도 국민들에게 그만큼 공동선에 대한 갈증이 많다는 얘기다. 진료복이 땀에 흠뻑 젖은 상태로 밖으로 나오는 그의 헝클어진 머리와 지친 표정에 사람들의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 행보라 하더라도, 그리고 정치적 속셈이 무엇이든 간에 공동체를 위한 선한 행동은 칭찬을 받게 마련이다. 위기 속에서 우리는 더욱 성숙할 것이다. 서로 손을 맞잡고 아픔을 나누는 한 코로나도 반드시 극복된다.

논설위원 jsshin@kmib.co.kr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