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중증장애인, 왼팔로만 버틴 11일의 자가격리

국민일보

[이슈&탐사] 중증장애인, 왼팔로만 버틴 11일의 자가격리

약자에 더 가혹한 재난 ① 사소한 일상이 공포가 됐다

입력 2020-03-06 04:03

재난은 늘 약자에겐 더 가혹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한민국 모두가 고통받고 있지만 약자에겐 이 문제는 생존의 위협으로까지 다가온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해 도시 기능이 흔들리고 사회 시스템이 마비된 대구의 취약계층은 더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공포감이 너무 크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게 그들의 호소다.

정부의 감염병 매뉴얼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인색했다. 매번 국가적 재난이 터진 뒤 시스템의 구멍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늦게 나오지만 곧 잊혀졌고, 이번에도 약자는 그저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국민일보는 중증장애인, 한부모가정, 비혼가정, 조손가정, 홀몸노인들이 지난 한 달간 살아온 이야기를 연이어 보도한다.

먹고 씻는 일상이 공포

코로나19 음성 판정이 지난 3일 나왔다. 5일 0시, 11일간의 완벽한 고립이 끝났다. 온 몸이 마비됐고, 왼팔 하나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김모(37)씨에게 자가격리 기간은 생존을 위한 분투의 시기였다. 생후 100일 때쯤 앓았던 황달이 뇌병변장애로 이어졌고, 온몸이 굳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활동지원사 도움 없이 처음 홀로 지낸 2주는 자신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중증 장애인임을 다시 증명해야 하는 시험 같았다.

고립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지난달 23일 소속 단체(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함께 일하던 활동지원사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그를 포함한 13명의 장애인과 16명의 활동지원사, 센터 직원들이 모두 격리 대상자로 분류됐다. 하루 5시간 자신의 손발이 돼 줬던 활동지원사마저 격리에 들어가 그는 버려지듯 혼자가 돼야만 했다. 그날 TV에 나온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엔 군과 경찰력까지 투입됐다. 대구는 전날부터 ‘심각’ 상황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진자가 대구에만 302명이 되면서 공포가 거리를 잠식할 때였다. 요양과 의료 시스템 공백이 현실화되면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일반 응급 환자도 속출했다. 국가가 자신까지 챙겨줄 여력은 없어보였다. 아무도 없는 원룸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가 고팠다. 밥을 먹어야 했다. 보급품으로 받은 즉석밥과 3분 카레가 눈에 들어왔다.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면 되는 그 사소한 일이 공포로 다가왔다. 싱크대까지 왼팔에 의지해 10㎝씩 기어갔다. 싱크대 앞에 둔 의자에 겨우 걸터앉은 뒤 그 앞에서 밥을 돌려 먹고, 옆에 둔 재활용 쓰레기봉투에 담는 일까지가 유일하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가족과 함께 살았고, 대학 기숙사에 살 때도 비장애인 학우와 같은 방을 썼다. 곁에서 잠시라도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고립 이튿날, 보급품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식품들이 지급됐다. 생쌀과 생배추가 왔는데, 헛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려 조리하라는 건 지체장애인에게는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래서 그는 보급품 중 가장 많았다는 라면을 모두 봉지째 남겼다.

“혼자서 도저히 조리를 할 수 없잖아요. 밥을 짓지도 못하고, 배추는 정말 어떻게 하라는 건지…. 더 무서운 건 조리를 하다가 화상이라도 입거나 넘어져 어디 부딪히기라도 했을 때 아무도 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거예요.”


별 수 없이 하루 한 번 배달음식을 시켰다. 그게 하루 유일한 식사였다. 하지만 격리된 상태라 그마저도 배달원이 문 앞에 음식을 두고 가면 현관까지 기어가 음식물을 가져와야 했다.

“배달음식 먹는다고 하면 맛있는 거 생각하시죠. 그런데 제가 주문한 음식은 모두 컵밥 같은 거였어요. 한 그릇에 다 담겨 나와야 하거든요. 그래야 쓰레기가 안 나오니까.” 최대한 줄이려 해도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쓰레기가 좁은 방을 채워갔다. 설거지할 게 쌓여 냄새가 났지만 참는 것 외에 별 도리가 없었다. 정부는 고립 엿새째인 지난달 28일 취약계층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장애인복지관 휴관을 권고했다.

청결은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한 필수 조치다. 그에게는 하루 한 번 몸을 씻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화장실까지 기어간 다음 벽에 설치된 봉을 잡고 몸을 일으킨다. 어렵게 변기에 앉아 샤워기 물을 튼다. 물로 온몸을 적시긴 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건 왼팔뿐이라서 머리를 감고, 세수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한 손이 닿는 곳까지만 물기를 닦고 그냥 옷을 입는다. 시간을 재보니 1시간30분이 걸렸다. 자가격리 기간 내내 기어만 다니다보니 바닥에 가장 많이 쓸리는 엄지발가락이 다 까졌다.


김씨에게도 가족이란 울타리는 있다. 따로 살긴 하지만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가 있다. 하지만 그는 차마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저 때문에 부모님이 일을 접고, 14일 동안 24시간 저랑만 붙어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다 자칫 자가격리된 자식이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식당에 손님이 오지 않을 거 아녜요.” 그렇게 김씨는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홀로 격리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립 8일째인 지난 1일까지도 보건소에선 연락이 없었다.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던 자가격리 확진자 중 두 번째 사망자가 나온 날이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됐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홀로 생활하다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숱하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은 안됐다. 단체의 도움을 받아 겨우 대구의료원에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음성 판정이 나왔고, 격리가 해제됐다.

“카페라떼를 마시고 싶어요.” 격리가 끝났지만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여전히 자가격리 중인 활동지원사가 많고, 활동지원사를 대신할 수 있는 단체 내 직원들도 다른 자가격리 장애인과 함께 ‘동반격리’ 중이어서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런데도 고맙다고 했다.

“대부분 장애인들이 시설에 갇혀 살던 시절에는 어떤 대책은커녕 아예 관심조차 받지 못했어요. 신종플루나 사스, 메르스 같은 재난이 와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았던 거죠. 하지만 지금처럼 관심을 가져주는 분도 늘고 하다보면 재난 시 장애인 대책들도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재난이 터지면 고통도 참아야 한다

코로나19로 평범한 일상생활이 사라지면서 장애인들은 더 큰 고통을 호소한다. 특히 활동보조 서비스 등 외부 도움을 받던 장애인들의 고통이 크다.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돼 외부 도움을 스스로 거절하기도 한다. 대신 불편과 고통을 감내한다.

코로나19 공포는 김윤미(42)씨의 휠체어 바퀴도 멈춰 세웠다. 바퀴가 멈추자 당장 고통이 피부로 다가왔다. 뇌병변 1급 장애를 앓고 있는 김씨는 지자체에서 받은 안마 바우처를 활용해 굳은 근육을 풀어주곤 했는데, 더 이상 안마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몸이 쉽게 굳어 근육통이 자주 찾아온다고 했다.

휠체어에 앉아서 하는 운동도, 휠체어 무용도 모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굳어가는 몸을 풀어주기 위한 필수적 활동이고, 김씨의 일상이었는데 모두 정지됐다. 김씨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까 몸이 더 붓고 아프다”고 했다.

몸이 자유롭지 못한 김씨에게 자가격리는 선택이 아니었다. 김씨는 “옆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많아서 혹시라도 감염이 되면 여러 사람에게 전파시키게 될까봐 더 조심하게 된다”며 “병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어 스스로 엄청 조심하게 됐다. 강제적인 격리라고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마스크 구매도 버거웠다. 집에서만 지낸 한 달 동안 새로 산 마스크는 하나도 없었다. 김씨는 “몸이 불편하다 보니 밖에 나가 줄 서서 마스크를 사기도 힘들다. 다행히 예전에 복지관에서 받아 둔 게 있어서 그걸 쓰고 있는데 이제 이마저도 다 떨어져간다”고 했다.

서준호 대구장애인인권연대 대표는 “기저질환이 있거나 면역력이 약한 분들은 불편을 감내하더라도 외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중증 장애인들의 경우 혼자 할 수 있는 일상생활이 거의 없는데, 장애인 확진자가 나오면서 상황이 더욱 열악해졌다”며 “장애인들은 이런 일이 터지면 재난 약자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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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나 정현수 임주언 김판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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