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칼럼] 국내용 정치만 판친 결과

국민일보

[김명호 칼럼] 국내용 정치만 판친 결과

입력 2020-03-09 04:07

국가 위기 속에서 구심점 역할 못한 채 능력 부재만 드러낸 초라한 정치…
의료진의 헌신으로 버티는 국가
생존 위해 편 가른 싸움에만 능한 국내용 정치의 과잉이
진짜 정치를 실종케 해


살면서 지금처럼 정치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라에 위기가 닥쳤고 이 위기가 경제·사회 전반에 어느 정도 후유증을 남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데, 위기 극복의 구심점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해결 과정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가 갖춰야 하는 능력과 말로만 하는 무능력의 차이가 이토록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지도 몰랐다.

정치가 이렇게 초라하게 보인 적도 없다. 바이러스 공습에 대한민국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위기에 구심점 역할을 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궁극적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책임이 있는 정치는 그저 하루 단위, 일주일 단위의 대책밖에 내놓지 못한다. 마스크 대책은 8일 정세균 총리가 내놓은 게 다섯 번째다. 마스크 5부제는 시행하기도 전에 대리 구매 허용 범위를 또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해서 변경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세부 사안까지 지시해야 고쳐지는게 지금 정권의 실력이다. 이리저리 허둥대는 정부의 대책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저 비판이 있으면 땜질식 방어용 대책만 나온다. 의료진과 전문가들은 현장에서 헌신과 희생으로 사투를 벌이는데 여야의 정치, 특히 집권세력의 정치는 뚜렷한 목적 없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과연 집권 세력의 정치와 위기 극복 조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의문이다. 여당은 대통령 탄핵을 막아야 한다며 ‘꼼수 정당’을 만들 것인지에만 온통 신경이 곤두서 있다. 대통령이 탄핵당할 정도의 정치를 했다고 인정한 것인지, 대단히 우스꽝스럽고 창피한 논리다. 제1야당이 아직도 박근혜 탄핵을 해결하지 못하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더 이상 말하기도 민망하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방역 실패, 마스크 대란 등에 대한 비판이 높지만 외국 언론은 꼭 그렇게 보지 않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7일자에서 한국의 대규모 진단 능력과 빠른 판정, 확진자 동선 공개 등 투명성, 현재까지 낮은 치사율 등을 높이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도 한국의 빠른 진단 능력과 진단 키트 상용화 능력이 상당히 더딘 일본·미국과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칭찬했다.

코로나19가 급격히 늘고 있는 이탈리아의 유력 일간지 라스탐파는 신천지라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지만 “한국은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에 준비가 잘 된 국가”라고 평했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왜 이럴까. 국내 평가가 야박한 건 야권의 여론 선동 때문인가. 꼭 그렇지 않다. 이때까지 국내용 정치만 판을 쳤기 때문이다. 핵심 집권 세력은 국내용 정치에 아주 능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더 정확히는 적을 상정하고 타도하는 권력투쟁에 능하다. 그런데 국가 재난급 위기가 왔다. 국내용 정치, 권력투쟁용 정치는 기능하지 못한다. 위기 시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짜 정치에는 무능한 것이다. 실력이 물 위로 드러난 게다. 야당이 집권 세력이었더라도 똑같았을 것이다. 이미 세월호와 탄핵 과정에서 봤고, 거기서 거의 벗어난 게 없으니 말이다.

국내용 정치는 권력과 예산을 내 편에게 떼주는 데에 온갖 신경을 쓴다. 그리고 때마다 돌아오는 선거에서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 공허한 말로 한철 지나간다. 정의니 공정이니 자유니 하는 추상적인 것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진짜 정치와 리더십은 실종되고 광장만 요란한 것이다.

신종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에 국내용 정치와 그 행위의 결과를 일깨워주고 있다. 패 갈라 싸우는 게 생존방식인 국내용 정치꾼들과 그들의 과잉 정치가 합리성과 균형성, 건강한 견제를 밀어낸 결과다. 약국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그 결과로 인한 정치와 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의 상징이기도 하다. 코로나19는 국가 재난 앞에서 이념 정치, 패싸움 정치가 얼마나 하찮은 건지를 가르쳐 준다. 정치가, 정치 리더십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일깨워 준다.

어쩌면 유엔 회원국 절반 이상이 빗장을 걸어 잠근 게 외부가 보는 우리의 진짜 위상에 가까울지 모른다. 위기에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고 했다. 윈스턴 처칠은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국내용 정치, 우물 안 정치에만 찌든 우리의 정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사회적 격리 속에서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져준 숙제다.

김명호 편집인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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