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11살짜리가 동생 기저귀를 간다… 코로나 수렁에 빠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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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 11살짜리가 동생 기저귀를 간다… 코로나 수렁에 빠진 아이들

[약자에 더 가혹한 재난] ④전염병은 11살 아이에게 돌봄을 맡겼다

입력 2020-03-11 04:02 수정 2020-03-11 17:56

돌봄에는 돈이 필요하다. 보육 지원이 멈추면 그 시스템에 기댔던 돈만큼 구멍이 발생한다. 끼니 문제를 겨우 해결해줬던 보육 시스템이 멈추면서 굶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이중고를 겪는 조손(祖孫)가정, 저소득 맞벌이가정 아동들 이야기다.

먹고사는 건 알아서 해결

혈관질환을 앓고 있는 A씨(66)는 제대로 끼니를 챙겨주지 못하는 손자 둘을 볼 때마다 가슴이 에이는 듯하다. 중학생인 손자들은 평소 식사를 학교에서 해결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방학이 연장되면서 집에서 세 끼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당장 늘어난 식비를 메울 만한 방법은 없다. 자신은 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 세 식구 살림은 그동안에도 위탁가정 양육비 36만원과 기초생활수급비로 겨우 이어갔다. 코로나19 이후 식비 부담이 늘었지만 시스템 정지로 필요한 금액은 추가 지원이 안 됐다.

신장투석을 받았던 A씨는 지금도 주 1회 외래진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보건용 마스크(KF마스크)를 구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병원에 다니다 손자들에게 병을 옮길까봐 걱정이다. 매주 얇은 일회용 마스크 두 장을 끼고 그저 아무 일 없기만을 바라며 병원과 집을 오갔다고 했다.

감염병 여파로 사라진 노인 일자리도 조부모가정에는 치명적이다. 김철우(가명·14)군의 할머니는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다. 원래는 일주일에 4번 정도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나갔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일이 모두 끊겼다. 일당 6만원, 한 주에 24만원을 벌 수 있었던 이 일은 김군과 할머니, 할아버지 세 식구를 먹여살리는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간헐적으로나마 반찬을 만들어 손자 축구부 훈련비를 댔던 윤성우(가명·18)군 할머니도 전염병이 퍼지면서 더 이상 그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아동과 노인 모두 감염에 취약한 조손가정에선 마스크를 구하는 일도 고역이다. 정부 기준은 매일 바뀌고 있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는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박성길(가명·68) 할아버지는 얼마 전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 있다는 소식에 새벽 4시부터 집을 나섰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설 수 있는 건 집에서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12살 손녀와 뇌병변 장애 1급인 11살 손자의 아비는 몇 년 전 세상을 떴다. 그 뒤 얼마 안 가 며느리도 집을 떠났다. 63살의 아내도 몸이 좋지 않다. 신장질환을 앓고 있어 면역력이 약한 손자를 생각하면 코로나19의 공포에서 마스크는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마스크 5부제 시행으로 상황이 좀 나아졌을까. 1952년생인 박씨와 57년생인 아내는 화요일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 손자 손녀만 집에 둘 수 없어 서로 번갈아 나와야 한다. 수요일엔 2008년생 손녀를 데리고 약국 줄을 서야 하고, 목요일엔 장애가 있는 2009년생 손자를 위해 대리수령 줄을 서야 한다. 마스크를 쥐기 위해 일주일에 3일 줄을 서야 하는 건 온전히 그의 몫이다.

이들처럼 대구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고 있는 조부모가정은 가정위탁지원센터에 등록된 것만 115가구(아동 144명)다.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는 “아이들이 학기 중엔 무상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는데 방학 연장으로 모든 식사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다 보니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식료품과 개인위생용품 지원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아이를 돌본다

두 살배기 막내는 기저귀만 찬 채 누워 있었다. 8살 둘째가 그 옆에 앉아 있다. 첫째 김재훈(가명·11)군은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려 계란을 부치고 있었다.

“햇반에 계란이랑 간장을 넣어 비벼 먹으려고 했어요.”

김군은 일주일에 한 번 식료품 지원을 위해 방문한 부산의 한 지역아동센터 활동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점심 무렵이었는데 그게 그날의 첫 끼였다고 한다.

저소득 맞벌이가정의 아이 돌봄을 위한 지역아동센터가 모두 문을 닫으면서 이런 상황이 3주째 이어지고 있다. 부모는 새벽에 일을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데 그때까지 기저귀를 갈고, 동생 밥을 먹이는 모든 돌봄을 초등학교 5학년인 첫째가 한다.

“설거지는 쌓여 있었고, 집안은 어지러웠어요. 3명 모두 아침도 먹지 못하고, 아이가 가스레인지 불을 켜는 그 상황이 너무 위태로워 보였어요. 잠옷 바람으로 하루 종일 TV를 보거나, 휴대전화 게임만 하고. 너무 짠했어요.”

긴급지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달 초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만 18세 미만 아동을 양육하는 저소득 가정 등 1500가구에 생필품과 위생용품을 지급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긴급’ 지원이라 빈 곳이 많다. 일자리 상실로 인한 생활비 문제, 개학 연기로 늘어가는 식비 부담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반찬 제공을 위한 자원봉사자가 부족해 돌봄 공백에 내몰린 상당수 아동들에게는 인스턴트식품 등 간편식 위주의 보급만 이뤄지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대구가정위탁지원센터 관계자는 “대부분 조부모가정이 생계급여와 양육보조금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는 상태로 코로나19의 피해로 인한 추가적인 생계비 지원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 자체적으로 일부 가정에 긴급생계비를 지원했다. 부산의 한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는 “어려운 가정의 부모들 경우 아이들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부식비가 많이 들어서 카드값이 많이 나왔다는 분도 계셨다”고 말했다.

임주언 김판 박세원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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