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 시들자 미소 짓는 봄꽃

국민일보

눈꽃 시들자 미소 짓는 봄꽃

서울 근교 가볼만한 야생화 명산

입력 2020-03-11 20:54
이른 봄 황량한 숲에 추위를 이기고 얼굴을 내민 앙증맞은 야생화를 한 사진작가가 카메라에 담고 있다. 뉴시스

황량한 숲에 앙증맞고 귀여운 봄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3월부터 시작된 봄꽃의 향연은 4월, 5월까지 이어진다. 봄에 떠나는 야생화 산책에는 주의가 요구된다. 막 새순을 틔워 봄을 맞는 어린 꽃이 낙엽 속에 숨어 있다. 발아래 짓밟혀 제대로 싹도 틔워보지 못하고 스러지는 꽃들도 꽤 많다. 자세를 낮춰 자세히 살피고 발밑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봄을 맞이하기 좋은 서울 근교의 산을 소개한다.

‘탐화 신병훈련소’ 천마산

천마산(812m)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다. 야생화 탐방의 세계에 첫발을 들인 이들에게 ‘신병훈련소’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데다 희귀한 북방계 식물이 많아 유명하다. 넓게 펼쳐진 산자락에 다양한 들꽃들이 철 따라 피고 진다. 만주바람꽃이 군락을 이룬다.

천마산 등산 코스는 여러 갈래다. 일반적인 등산은 호평동 수진사 입구에서 출발해 정상에 이르는 코스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들꽃 산행은 다르다. 오남읍 팔현리에서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이 인기다.

다래산장을 지나면 곧 계곡이 시작된다. 초입부터 들꽃들이 아우성이다. 이곳에는 수리산에서 보기 힘든 너도바람꽃이 많다. 대여섯 장의 꽃받침 안에 노란 꿀샘이 둥근 원을 이룬다. 그 안에 풀빛의 암술이 숨어 있다. 앙증맞은 몸뚱아리에 화려한 우주가 깃들어 있다. 위로 올라가면 봉긋한 자태의 앉은부채를 만날 수 있다. 4월이 되면 처녀치마, 현호색, 개별꽃, 큰괭이밥, 얼레지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화야산의 주인 ‘들바람꽃’

화야산 자락 뾰루봉 초입부에는 ‘들바람꽃’이 많이 핀다. 바위와 낙엽 틈 곳곳에서 하얗게 빛난다. 들바람꽃은 다른 바람꽃과는 잎사귀도 확연히 다르지만, 꽃 뒷면이 붉어 다른 바람꽃과 구분이 된다. 꽃이 활짝 피고 나면 이 뒷면 붉은 기운이 없어지고 하얗게 변한다.

화야산은 얼레지로도 유명하다. 진분홍 꽃잎의 색과 자주색 무늬가 있는 잎의 색이 대조적인 얼레지는 화려함을 한껏 뽐내는 ‘봄 처녀’ 같다. 긴 꽃잎이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180도 형태로 뒤집히는 게 신기하다. 김선우 시인은 ‘대궁 속의 격정’으로 ‘뜨거워진다’고 얼레지를 노래했다. 각시현호색은 꽃이 작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점현호색’의 고향 축령산

경기도 가평군의 축령산에서도 다양한 봄꽃을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점현호색. 처음 발견지가 천마산이어서 처음엔 ‘천마산점현호색’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특정 지역의 이름을 붙이는 게 좋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점현호색으로 불린다. 잎 곳곳에 물 빠진 듯 점이 번져있다. 현호색은 잎에 점이 없다.

중의무릇도 자주 보인다. 작고 노란 꽃과 길고 말린 잎이 멋지다. 잎만 보면 난초를 닮았다. 하지만 백합과다. 부엽질이 많은 그늘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활짝 핀 모습을 보려면 해가 나오는 정오 이후가 좋다.

야생화의 숨은 천국 예봉산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자리한 예봉산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식생을 지니고 있다. 천마산이나 화야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 야생화 군락지다. 얼레지 군락은 기본이고, 홀아비바람꽃이나 피나물은 무더기로 핀다.

모든 지역이 다 야생화로 뒤덮이는 건 아니다. 운길산역에서 주필거미박물관을 지나 세정사라는 작은 절 왼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꽃 트레킹이 시작된다.

왕제비꽃은 제비꽃 가문의 자손 중 선제비꽃 다음으로 느긋한 성격을 지녀 5월이나 돼야 슬금슬금 피어난다. 멸종위기식물 2급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올해 모든 식물의 개화기가 앞당겨져 4월이면 볼 수 있을 듯하다.

5월에는 꿩의다리아재비가 깔린다. 산 위쪽에서는 ‘는쟁이냉이’가 많이 보인다. ‘는쟁이’는 명아주의 방언으로, 명아주처럼 넓은 잎을 가졌고 냉이처럼 십자화과 식물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