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봄에도 꽃은 花르르~

국민일보

빼앗긴 봄에도 꽃은 花르르~

‘야생화 트레킹 1번지’ 경기도 안양 수리산

입력 2020-03-11 20:09
경기도 안양시 수리산 병목안 계곡에 고개를 내민 노루귀 꽃대의 보송보송한 솜털이 역광을 받아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2020년 대한민국의 봄이 실종됐다. 매년 봄이면 화사한 꽃 소식과 함께 열리던 전국 지역 봄축제가 대부분 취소됐다. 봄이면 가장 먼저 반기던 대표 매화축제가 열리지 않는다. 다음달로 이어질 벚꽃축제나 진달래꽃축제도 취소를 피해갈 수 없을 듯하다. 꽃축제는 개최되지 않지만 조용히 봄꽃을 즐길 수 있다. 주변 야생화 군락지를 찾으면 나만의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는 ‘야생화 트레킹 1번지’로 꼽히는 경기도 안양시 수리산이 대표적이다. 트레킹을 겸할 수 있어 금상첨화다. 수리산은 안양과 안산, 군포 등 세 도시에 걸쳐 있다. 수리산에는 ‘변산아씨’(변산바람꽃의 애칭)와 노루귀가 산다. 잘 살펴보면 드물게 ‘꿩의바람꽃’도 눈에 띈다.

봄꽃 만나러 가는 출발지는 병목안 시민공원이다. 병목안은 병목처럼 마을 초입이 좁으나 안으로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제3산림욕장 방향으로 계곡을 따라 걸으면 개울 바로 옆에 버들강아지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제3산림욕장 직전에서 정자 옆으로 슬기봉 방향으로 오르다 돌탑 인근에서 왼쪽 계곡으로 들어서면 노루귀를 만날 수 있다. 잎이 올라올 때 노루의 귀처럼 동그랗게 말린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노루귀 꽃의 지름은 약 1.5㎝다. 꽃잎은 없고 꽃잎 모양의 꽃받침이 6∼8개 있다. 꽃받침은 대부분 연한 자줏빛이며 수술과 암술이 여러 개 있다. 손가락 길이의 꽃대에 빽빽이 달린 보송보송한 솜털이 인상적이다.

계곡 주변 돌 틈과 나무 사이에서 가녀린 몸으로 봄소식을 전한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아침 햇빛을 받은 솜털이 눈부시게 화려하다.

‘변산아씨’란 애칭으로 불리는 변산바람꽃. 꽃잎처럼 보이는 바깥 흰색 꽃받침잎 속 황록색 깔때기 모양을 지닌 것이 꽃잎이다.

노루귀 군락지 바로 위에 변산바람꽃이 있다. 희끗희끗한 잔설 틈에서도 꽃샘추위와 바람에 맞서며 피어나는 꽃이다. 변산바람꽃의 학명의 속명인 ‘byunsanensis’는 최초 발견지인 전북 변산에서 따왔다. 하지만 거의 전국적으로 자생하는 한국 특산 식물이다.

꽃잎처럼 보이는 바깥 흰색 5장은 꽃받침잎이다.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꽃받침잎을 꽃잎처럼 넓게 활용한 것이다. 꽃잎은 그 안에 초록색, 노란색 또는 황록색 깔때기 모양으로 있다. 꽃 밑에 달린 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과 잎의 중간 형태인 ‘포엽’이다. 진짜 잎은 꽃이 질 무렵 땅속에서 나온다.

군락지로 들어서면 손가락 몇 마디 정도의 작달막한 꼬마아가씨들이 수줍게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녀린 자태지만 추운 겨울을 이겨낸 강인함이 느껴진다. 이들 앞에서는 저절로 무릎이 굽혀지고 몸이 낮아진다.

순백의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꿩의바람꽃.

변산아씨 바로 옆에 수리산에서는 보기 힘든 ‘꿩의바람꽃’이 몇몇 보인다. 꽃자루 하나가 길게 올라와 끝에 한 송이 꽃이 달려 있다.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역시 꽃받침이다. 꽃받침은 8~13장으로 이뤄져 있고 흰 바탕에 은은한 자줏빛이 감돈다. 수술까지 흰색이어서 영락없이 흰 꽃이다. 은은한 순백의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군락지에서 위로 올라가면 수리산 슬기봉(451.5m)으로 이어진다. 수리산은 산본이나 군포시에서 보면 독수리를 닮아서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1864년에 편찬된 대동지지에 ‘자못 크고 높은 취암봉(수암봉)이 있는데 독수리 취자를 일컬어 수리(修理)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다. 관악산, 청계산과 더불어 한강 남쪽에서 서울을 에워싸고 있는 수리산은 한남정맥의 한줄기로,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올라 있다. 최고봉인 태을봉(489m)을 중심으로 슬기봉, 관모봉(426.2m), 수암봉(395m)이 연결돼 있다. 수리산 일대는 제1호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기념지역이다. 수도 사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이들이 지난 60년 가까이 이 산자락에 묻혀 있었다.

병목안캠핑장 야생화 조성단지에 피어 있는 황금빛 복수초.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꽃으로, 꽃잎이 한낮에 벌어지고 추운 밤 닫힌다.

수리산에서는 황금빛 복수초도 만날 수 있다.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꽃으로, 한낮에만 꽃잎이 벌어지고 추운 밤 꽃잎을 오므린다. 복수초는 병목안캠핑장 야생화 조성단지에 피어 있다. 자생이 아니라 키운 것이지만 노란빛의 화려한 자태는 손색이 없다.

여행메모

안양역에서 창박골行 52번 버스
소형 삼각대·끈기·부지런함 필요


승용차를 타고 수리산에 가려면 병목안 시민공원을 찾으면 된다.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곧장 가면 제3산림욕장이 나온다. 산림욕장 인근에 작은 주차장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안양역에서 창박골 방면 52번 버스를 타면 된다.

키가 작은 봄꽃을 찍으려면 소형 삼각대가 요긴하다. 렌즈 교환식 디지털카메라(DSLR)가 좋지만 소형 콤팩트 카메라도 괜찮다. DSLR이라면 접사용 매크로 렌즈를 주로 쓴다. 콤팩트 카메라도 접사 기능을 갖춘 것이 많다.

봄철에 야생화를 찍으려면 끈기와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기온과 빛의 양에 따라 꽃 상태도 수시로 바뀌므로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노루귀의 솜털 등 섬세한 모습과 아름다운 색감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역광을 잘 활용해야 한다.

안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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