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참 나쁜 정치다”

국민일보

[김진홍 칼럼] “참 나쁜 정치다”

입력 2020-03-16 04:01

‘미래한국당은 꼼수’라고 비난하더니 비례대표용 정당 창당이라는 꼼수 택한 민주당
사표 방지와 소수당 배려라는 선거개혁 취지 스스로 파괴해
과정도, 명분도 어설픈데 실리는 챙길 수 있을까


자유한국당(현재의 미래통합당)이 만든 미래한국당은 꼼수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허점을 파고들어 표의 등가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난은 설득력이 있었다. ‘헌법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교란시키는 가짜 정당’ ‘표심을 왜곡하는 대국민 사기극’ 등등.

하지만 불법은 아니다. 중앙선관위도 막지 못했다. 희한한 현상이 생긴 이면에 제1 야당을 배제한 채 민주당 주도로 개정된 ‘누더기 선거법’이 있다. 이 법에 따르면 기존 정당이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어도 속수무책이다.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안의 맹점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채 군소정당들과 함께 부랴부랴 처리한 탓이다.

비례대표용 정당은 미래한국당뿐이 아니다. ‘조국 수호당’ 창당이 선언됐고,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깨어있는 시민연대당’을 준비 중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 금배지를 탐내는 별의별 정당들이 속출하는 상태다.

이 와중에 황당한 사건이 추가됐다. 미래한국당을 그토록 비난했던 민주당이 미래한국당의 꼼수를 따라 하기로 정한 것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제1당 자리를 미래통합당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군소 야당까지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 창당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형식 면에서는 미래한국당과 다르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는 거의 같다. 민주당이 비례대표용 정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지 않은가.

과정은 우스웠다. 내부 의견이 찬반으로 갈리자 전 당원 투표에 부쳐 수도권 및 영남지역 일부 의원의 반대론을 잠재웠다. 투표에 참여한 당원들 상당수는 비례정당에 찬성하는 ‘문팬’이다. 투표는 요식행위에 가까웠다. 문팬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는 장면이다. 당내에서 쓴소리를 해왔던 금태섭 의원이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된 것도 친문의 반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명분은 허접하다. 애초 들고나온 건 ‘대통령 탄핵 저지’였다.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이런 보고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려면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수 발의와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미래통합당이 올 총선에서 200석 이상을 가져갈 것으로 여기는 건지 의아스럽다. 또 탄핵 여부의 최종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한다.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위성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건 궤변에 가깝다.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공포마케팅이라는 느낌마저 준다. 아니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비롯해 뭔가 켕기는 구석이 정말 있을지도 모르겠다.

민주당도 좀 과했다고 판단한 걸까. 요즘엔 ‘미래통합당에 의석을 도둑맞게 생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선거법을 그렇게 바꿔놓고 이제 와서 미래통합당을 ‘도둑’ 취급하며, 자신들 행위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는 게 온당한가. 사표 방지와 소수당 배려라는 선거개혁 취지를 스스로 파괴한 자가당착의 길로 성큼성큼 나아가면서 되레 큰소리를 치는 격이다. ‘비난은 잠시, 책임은 4년’이라는 말을 대놓고 한다. 그동안 숱하게 봐왔지만, 이 지점이 ‘내로남불’의 정점 아닐까 싶다.

비례연합정당은 ‘총선용 떴다방 정당’이다. 선거가 끝나면 원래 소속 정당으로 흩어질 것이다. 표심이 제대로 반영될 리 없다. 현재로선 연합정당을 세우는 것 자체도 여의치 않다. 정의당 참여가 관건이지만, 정의당은 아직까지 반대다. 연합정당 플랫폼을 표방하는 ‘정치개혁연합’과 ‘시민을 위하여’ 등과의 통합도 모색하고 있다. 참여 정당이 확정되면 정식 창당과 비례대표 후보들 순위를 정해야 한다. 그들만의 짬짜미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고, 파열음이 생길 수 있다. 이어 비례연합정당 당명이 투표용지 위쪽에 새겨지도록 통합당처럼 ‘의원 꿔주기’를 할 공산이 농후하다. 이처럼 민주당은 비례대표 정당 후보 등록 마감일인 오는 27일까지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낼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기세가 한풀 꺾인 형국이지만 국민은 여전히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경제도 엉망이다. 일각에서 우리나라의 방역체계 우월성을 자찬하지만, 외국의 시선은 ‘대한민국=위험 국가’일 뿐이다.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들이 계속 늘고 있다. 집권세력의 신속하고도 적절한 대처가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하지만 여당은 의석 몇 개 더 얻는 데 몰두하고 있다. ‘참 나쁜 정치’다.

김진홍 대기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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