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통장 잔액 0원, 현금 1만6300원… 실직 일용직의 절규

국민일보

[이슈&탐사] 통장 잔액 0원, 현금 1만6300원… 실직 일용직의 절규

[코로나19가 던진 비명의 사슬] ② 가장 먼저 무너진 사람들

입력 2020-03-18 04:0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시민의 생활로 침투하자 취약계층인 일당 노동자의 삶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들은 속절없이 그저 버티는 것 외에 도리가 없다. 카드를 돌려막거나, 그마저 어려운 사람들은 주변 지인에게 빚을 냈다. 융통할 수 있는 돈이 한계에 와 막막한 실직 식당 일용직은 우울증이 심해졌고, 약을 살 돈마저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대책은 전혀 이들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

통장 잔액 0원

“어휴, 지금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죠. 심장이 벌렁벌렁해.”

혼자 사는 장미영(가명·61)씨는 우울증 약을 1년째 달고 산다. 단둘이 지내던 노모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뒤부터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게 증세를 키웠다.

“그래도 식당 일을 하면서 조금씩 회복했는데, 이제는 일을 못하고 집에만 있으니까….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약을 타는데, 그게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우울증이 다시 깊어진 건 돈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며칠이라도 일해 번 돈과 지인에게 손을 내밀어 빌린 돈으로 방세 50만원을 냈는데, 3월에는 수입이 제로(0)여서 눈앞이 캄캄하다. 장씨는 몇 년 전 보험설계사 일을 하다 실적이 나빠 그만뒀는데 선지급 수수료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됐고, 보험도 다 압류된 상태였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하며 잔액이 0원인 통장 잔액을 보여줬다.

“통장에 만 얼마 들어 있었는데 엊그제 전기요금 2만2000원 정도가 나와서 자동인출됐어. 새마을금고 가서 통장 찍어보니 잔액이 없어요. 그것도 1만원 정도 못 낸 거야.”


장씨 방 화장대 위엔 1300원어치 동전 몇 개와 만원, 5000원 지폐 한 장씩이 놓여 있었다. 1만6300원이 그녀의 전 재산이다. 병원 갈 때 쓸 돈이라고 했다. 지인들에게 빌린 돈은 원금만 1500만원이 남아 있다. 일할 땐 한 달에 20만~30만원씩 갚았는데 지난달부터는 그것도 못하고 있다.

“어딜 나갈 형편도 안 되고, 지금도 김칫국에 밥이나 말아 먹자 생각했어요. 냉장고에 고추장이랑 된장밖에 없어. 하루 한 끼씩 먹고 버티고 있는데, 지금 보니 쌀도 밥 한 번 하면 없겠다 싶은 그런 상황이네요.”


냉장고에는 장류 몇 가지와 박카스 여섯 병이 있었다. “일할 때 너무 힘드니깐 하나씩 가져가서 마시던 건데 지금은 안 먹고 아껴두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돈이 없어 종일 집 안에만 있다. 창문을 열어 온종일 밖을 쳐다보거나 TV만 보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활동 없이 고심만 거듭하다 보니 우울증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나이가 이제 예순을 넘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찾지 못했다. “몇 번 동사무소에 가봤는데 뭐가 복잡해요. 나이가 65세가 안 돼 연금도 안 된다고 하고. 코로나19에 걸려 격리되면 정부가 생활비를 준다는데, 차라리 걸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대출 돌려막기

김화진(가명·60)씨 남편은 쌍용자동차 하청업체에서 일을 하다 3년 전 병이 왔다. 자꾸 몸이 아파 병원에 가봤는데 심근경색이라고 했다. 스텐트 시술을 받았지만 몸을 회복하지 못했고, 집 안에서만 지내고 있다. 그 뒤로 김씨가 가장이 됐다. 그녀는 종로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일당 주방 일로 한 달 200만원 정도를 벌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지난달 20일 식당 사장은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며 그만 나오라는 말을 했다.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식당 정직원들도 3주간 휴가 보내는 마당에 일용직 입장에서 뭐라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고 했다. 지금껏 김씨는 일을 전혀 구하지 못했다.

수입이 완전히 끊기면서 김씨가 해야 할 일은 지인들에게 읍소하는 거로 바뀌었다. 200만원 수입은 사라졌는데 빚은 몸집을 더 키우기 때문이다. 그가 매달 은행에 내는 빌라 보증금 대출 원리금이 60만원, 생활비 때문에 따로 빌린 돈 원리금이 20만원이다. 매달 내야 하는 보험료와 전기세 등 공과금은 에누리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도 권고사직을 당했다. 아들은 서울의 한 귀금속 상가에서 일했는데, 여기도 손님이 없어지면서 김씨 아들을 내보냈다. 아들은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한다. 그녀는 “안 좋은 일은 왜 이렇게 같이 생기는 거냐”고 토로했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불면의 시간이 늘었다. 막아야 할 돈이 매일 다가오는 달력은 시한폭탄 초침 같다. 눈을 감았다 뜨면 하루가 지나는 게 고역이다.

“지난달 내야 할 80만원은 빌려서 냈는데, 이달이 문제예요. 다음 달엔 남편 병원 가야 하는데 검사비만 한 번에 40만~50만원 정도 나오고, 약값도 반년치 30만원이에요. 빌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러니 참 암담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사람인데, 사는 것 자체가 비참한 거죠. 어제도 새벽 4시까지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잠을 못 잤어요.”

지난 4주간 일을 못한 실직 일당 노동자 신복현(가명·61)씨도 상황은 같았다. 그녀는 남편이 받는 노인연금과 카드 돌려막기로 연명하고 있었다. 신씨는 “두 달 안에는 사태가 끝나길 희망하면서 그냥 카드로 대체하고 있다. 다음 달이면 돌려막아야 할 돈이 160만원까지 늘어난다”며 “안 풀리면 연체로 신용불량자가 되는 거다. 공공근로도 없어졌고, 하늘에서 도와주기만 기다린다”고 했다.

신씨는 그래서 인력사무소에 내는 회비 5만원이 딜레마다. 혹시나 있을 일거리를 받으려면 그 돈을 내야 하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 돈이 너무 크다.

1. “훔쳐 먹든 주워 먹든 해야 할 판” 실직 도미노
3. 나만 피해가는 코로나 대책…받은 게 하나도 없다
4. “오늘 밤에라도 당장 돈 줘야” 취약층 생존 한계

전웅빈 김판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