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송현동 부지는… 88년간 외세에 뺏기고 23년간 잊혀졌다 시민 품으로

국민일보

[단독] 송현동 부지는… 88년간 외세에 뺏기고 23년간 잊혀졌다 시민 품으로

입력 2020-03-17 20:56 수정 2020-03-17 21:35

서울 종로구 송현동 대한항공 부지는 조선시대 경복궁 동쪽에 위치한 소나무 언덕이었다. 그래서 지명도 송현(松峴)이다.

1780년 한양전도를 보면 소나무 언덕으로 궁궐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소나무 숲 외곽쪽엔 왕족과 명문 세도가들이 모여 살던 저택들이 자리잡기도 했다. 18세기 도성대지도에 따르면 광해군의 장인이 거주했고, 영의정 심상규가 소유한 땅이었다.

송현동 부지는 일제 수탈과 미 군정 압수 등으로 88년간 외세에 소유권을 빼앗긴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식민자본인 조선식산은행(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 사택이 건설되고 문화주택이 건립되기도 했다. 광복 후엔 일제의 적산으로 처리돼 미군에서 접수해 미군 숙소, 주한미군대사관 사택 부지로 활용됐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직전엔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미국대사가 미국 중앙정보국(CIA) 고위 인사를 만난 곳이기도 하다. 이 인사는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전두환 신군부가 수도권 지역 일부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한 조치가 군사 쿠데타를 기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1997년에야 소유권이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삼성생명이 1400억원에 매입하면서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부지 개발을 하지 못했고 소유권은 다시 2008년 대한항공으로 넘어갔다. 대한항공은 2900억원에 매입한 뒤 호텔사업과 문화체험공간 사업을 추진했으나 모두 무산됐다.

이처럼 소유권이 우리나라로 넘어온 뒤로도 2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시민들은 내부를 들여다볼 수조차 없는 잊혀진 땅이었다. 이 땅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2019년 2월 한진그룹이 해당 부지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대한항공은 올해 2월 이사회를 열어 송현동 부지 매각을 의결했다. 이어 같은 달 매각 주관사 선정을 진행하면서 민간 매각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공적 활용을 위한 협의 매수를 추진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김재중 선임기자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