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남침 속 대한민국 구한 세 번의 기적, 우연이 아니다

국민일보

북한 남침 속 대한민국 구한 세 번의 기적, 우연이 아니다

[6.25전쟁 70주년] 김재동 목사의 잊지 말아야 할 그때 그 역사 <1>

입력 2020-03-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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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50년 6월 27일 유엔주재 소련대사가 불참한 가운데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83’을 7대 1(기권 2)로 가결했다. 결의안의 내용은 회원국에 북한의 군사공격을 격퇴하고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국민일보DB

올해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는 이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영적으로 반드시 끝내야 하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주 6·25전쟁 격전지를 탐방하고 전쟁 생존자를 만나 인터뷰한다. 이 전쟁에 관심을 갖는 것은 6·25전쟁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이며,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분이 피 흘리며 싸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 공산군의 기습남침 공격으로 시작됐다. 지상군 약 18만명, 대포 400문, 소련제 탱크 242대 등의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국군은 4일 만에 절반가량인 4만4000여명이 전사하거나 포로가 됐다. 서울도 함락되고 말았다.

당시 대한민국은 누가 봐도 패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지만,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원인은 뭘까. 그 배경에는 몇 가지 기적 같은 일들이 있었다.

첫째,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신속하게 미군 참전을 결정했다. 당시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은 참전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한반도를 미국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 선언이 발표된 뒤였다. 자국이 공격받은 것도 아닌데 트루먼이 그렇게 빨리 미군을 한반도에 투입한 것은 기적이다.

둘째, 유엔 상임이사국 회의에서 유엔이 참전을 결의할 때 소련 대표가 불참했다. 6·25전쟁을 둘러싼 미스터리 중 하나는 50년 6월 27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소련이 불참한 것이다. 만약 회의에 참석해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유엔군 참전 16개국, 의료지원 5개국, 물자지원 39개국, 전후복구 7개국 등 67개국의 지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계 전쟁사에 한 국가를 위해 67개국이 참전한 역사는 기네스북에 기록될 만큼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셋째, 북한 공산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약 1주일간 서울에서 지체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김일성은 “인민군이 남으로 침공해 서울을 점령하기만 하면 남한 내 각처에서 북에 동조하는 인민들의 대대적 봉기가 일어난다. 그러면 우리가 싸우지 않아도 남반부는 스스로 무너진다”는 박헌영의 말을 믿고, 서울에서 1주일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 1주일이 결국 미군과 유엔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입하는 시간을 만들어 줬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은 우연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분명히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기도의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

50년 6월 28일 서울에 진입한 소련제 T-34 전차. 국민일보DB

결정적으로 6·25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에서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피 흘리며 싸운 국군과 UN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군은 한국을 위해 가장 많은 희생을 치렀다. 미군은 50년 7월 1일 스미스대대 장병 540명이 부산에 상륙한 이래 3년 1개월 동안 178만명이 참전했다. 인천상륙작전, 낙동강 방어 전투, 장진호 전투 등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전사 5만4246명, 실종 8177명, 포로 7140명, 부상자 10만3284명 등 17만2847명이 희생됐다.

세계 최강국 국민이 약자를 위해 바친 희생은 값지고 숭고했다. 특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장관·장군 등 최고위층 아들 142명이 참전해 그중 35명이 전사했다는 사실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아이젠하워 육군 중위는 52년 미 3사단 중대장으로 참전했고, 워커 8군 사령관의 아들 샘 워커 중위는 미 24사단 중대장으로 참전해 부자가 모두 한국전 참전 가족이 됐다. 워커 장군은 도봉동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 지니 밴 플리트 2세도 B-52 폭격기 조종사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52년 4월 새벽 평남 순천 지역으로 야간출격을 나갔다가 전사했다. 미 해병 1항공단장 필드 해리스 장군의 아들 윌리엄 해리스 소령은 중공군의 2차 공세 때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하버드대학의 교내 예배당 벽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2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월터리드 미 육군병원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중상을 입은 용사 수십 명이 아직도 병상에 누워 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했다. 2009년 미국의 국방정보센터(CDI)는 6·25전쟁 당시 미국이 부담한 전쟁비용이 총 670억 달러라고 산출했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910억 달러(약 767조 원)에 달한다.

미국이 한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 물자만 지원한 게 아니다. 한국 국민 전체를 먹여 살리며 싸웠고 고귀한 생명까지 바쳤다.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한국은 그때 없어졌을 것이다. 살아남았다고 해도 아프리카처럼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김재동 목사
약력=성균관대 전자공학과 및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졸업. 경인여대 강사 역임. 현 대한역사문화원 원장, 6·25 역사탐방 코디네이터, 서울 하늘교회 담임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