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너희는 깨어 있으라”

국민일보

[바이블시론] “너희는 깨어 있으라”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

입력 2020-03-20 04:04

인류는 BC와 AD로 나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원의 시간을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인류는 이제 인간의 역사가 BD와 AD로 나뉜다고 믿었습니다. 디지털(Digital)이야말로 뚜렷한 분기점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벽두에 코로나(Corona)19를 만났습니다. 사태의 파장을 보면 이제 인류는 BC와 AC로 나뉠 전망입니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마치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온통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가 이 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이미 이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삶의 방식에 관한 담론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만든 초연결사회의 본질은 결국 인간이 어디에 살건 불안과 불만의 동시성도 함께 경험할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보여줍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전쟁 때나 들어보았던 통행금지가 부활됐고, 몇몇 나라에서는 전국적인 봉쇄가 선포됐습니다. 대부분의 감염 지역에서는 사회적 거리를 만들어 일상의 연결고리를 끊으라는 강제명령이 존재양식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 여파는 어디까지 갈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력이 이 정도인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바이러스의 감염 경로와 감염 속도를 시각화한 영상들로 인해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취약성에 재차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이 ‘불가시(不可視)의 존재’들과 공존해야 하는 현실에서 생존하는 비결은 한마디로 압축됩니다. “항상 깨어 있으라.” 모두가 일시에 바이러스에 깨어났습니다. 사람들의 시선만 없다면 급히 화장실을 빠져 나가던 사람들조차 30초 룰을 지켜가며 비누로 꼼꼼히 하루 몇 차례나 손을 씻습니다. 주위 사람의 잔기침 소리 하나에도 극도로 긴장합니다. 모두가 깨어났습니다.

역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존재는 바이러스만이 아닙니다. 원자나 양자만이 아닙니다.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습니다. 무한해서 그 형태를 지각하지 못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영원해서 찰나적인 존재로서는 알 길이 없는 존재가 있습니다. 모세가 그분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 속에서 들린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믿음의 자손으로 편입된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늘 그분께 깨어 있습니다. 적어도 바이러스에 대해 깨어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예민하게 깨어 있기를 소망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깨어 있을 때 모든 두려움에서 자유함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졸 때가 많습니다. 깨어 있어도 몽롱할 때가 많습니다. 깨어 있어도 깨어 있지 않은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모두를 흔들어 깨우십니다.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 21:36)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할 이유를 알려주십니다.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막 13:35)

인간은 주인의 아들을 제거하면 스스로 주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주인 맞습니까? 숱한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 자가격리를 결정하는 이때, 믿음의 사람들은 영원히 구원은 인간의 능력 밖의 사건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시 62:1) 그래서 이 사태가 지나가더라도 끝까지 깨어 있기를 결단합니다.

조정민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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