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n번방’ 회원 공개할 수 있게 처벌조항 강화하라

국민일보

[사설] ‘n번방’ 회원 공개할 수 있게 처벌조항 강화하라

입력 2020-03-23 04:01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촬영한 성착취 음란물을 메신저 텔레그램에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모씨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22일 2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18일 게시된 지 나흘 만으로, 역대 최다 동의 수를 기록했다.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모두의 신상을 공개하자는 국민청원도 사흘 만에 이미 135만명을 넘어섰다.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어 폭발적 동의를 얻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경악스럽고 추악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처벌에 대한 기대가 낮기 때문인 측면이 있다.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이 지난해 여름부터 6개월간 사이버 공간에서 잠복취재해 세상에 알리고, 경찰 수사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 실태는 너무나 참담하고 무서운 성착취 현장이었다. 조씨는 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피해자들을 유인해 나체사진을 받아내고 이를 빌미로 성착취물을 찍도록 협박한 뒤 유료 회원들을 대상으로 유포했다. 조씨와 공범 4명은 지난 19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상 7가지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 조사 결과 현재까지 나온 피해자는 74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무려 16명이 미성년자다. 수시로 방을 없애고 재개설하는 수법을 써 실체 파악이 쉽지 않지만 회원 수는 26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집단적인 성폭력 공범자들이다.

경찰은 일단 조씨에 대해선 신상공개를 검토 중이다. 이 경우 성폭력 범죄 피의자에 대한 최초 신상공개 사례가 된다. 경찰은 또 박사방 회원들도 반드시 검거해 강력히 처벌하겠다며 수사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검거되더라도 다수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법의 철퇴를 피해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연히 신상공개 자체도 쉽지 않다.

현행법상 성인 여성을 상대로 한 성착취물의 경우 촬영하거나 유포하지 않고 소지만 했다면 처벌 조항이 없다. 미성년자의 성착취물을 소지한 경우에만 아청법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처벌 조항 자체가 너무 미흡한데다 기소되더라도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에 맞게 법을 개정하고 양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탓이다. ‘미투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는 “예견된 범죄”라며 “n번방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은 정말 제대로 된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 당국과 국회는 하루빨리 이 경고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1회. 텔레그램에 강간노예들이 있다
2회. “신검 받는 중ㅋ” 자기 덫에 걸린 놈
번외편. 노예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3회. ‘약한’ 남성일수록 성착취에 집착한다
4회. “우린 포르노 아니다” 함께 싸우는 여성들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