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가족마저 격리… 봉사자가 대신 유골 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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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 가족마저 격리… 봉사자가 대신 유골 수습

[치명률 1.2%에 가려진 비극] ② 코로나 사망자 화장장 르포

입력 2020-03-24 04:0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유족들이 지난 18일 대구 수성구에 있는 시립화장장 명복공원에서 방호복을 착용하고 화장터로 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숨진 고인의 시신 8구가 이날 명복공원에서 화장처리됐다.대구=방극렬 기자

‘김○○ 우○○ 박○○ 김○○ 유○○ 류○○ 박○○ 하○○’

지난 18일 오후 3시45분쯤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명복공원의 검은 전광판에 8명의 이름이 흰색 불로 들어왔다. 대구 내 유일한 시립화장장인 명복공원은 대구와 인근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숨진 이들이 화장되는 곳이다. 이날까지 코로나19 사망자 65명이 이곳에서 화장됐다.

이날 오후 코로나19로 숨진 고인의 시신 8구가 명복공원으로 왔다. 오후 3시40분쯤 흰색 스타렉스 운구차량을 시작으로 운구차 8대가 연이어 도착했다. 운전기사와 유족들은 검은 상복 대신 의료진용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박기수(54) 명복공원 소장은 “(시신이) 이렇게 많이 온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도 방호복과 마스크, 보호안경, 장갑 등으로 무장했다. 박 소장은 유족의 화장동의서와 사망진단서를 차례로 접수했다. 그는 “장례도 못 치르고 오셨으니 마음이 찡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망자들은 감염을 우려해 사망 뒤 24시간 내 화장이 권고된다. 유가족 동의를 조건으로 ‘선 화장, 후 장례’ 된다. 사망하고 24시간이 지나야 화장이 가능한 일반 시신과 다른 원칙이 적용된다.

사망자 8명의 화장은 오후 4시쯤부터 시작됐다. 평소라면 화장장 업무가 끝났을 시간이다. 코로나19 사망자들은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 일반 화장이 모두 끝난 뒤 화장된다.

화장이 시작되자 유족들이 방호복을 입은 채 화장터로 향했다. 평소 옷차림으로 온 유족은 대기실에서 미리 방호복을 덧입었다. 방호복이 낯선 유족들은 서로에게 “이게 맞는 거가?” “어휴 숨 찬다”고 말했다. 박 소장이 옆에서 “먼저 모자를 쓰시고 보호경을 쓰면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장례지침에 따라 유족이 원할 경우 개인보호구를 착용하고 화장을 참관할 수 있다. 다만 정부는 참관 인원을 최소로 줄이라고 권고한다. 박 소장은 “일반적인 화장에선 유족이 10명씩도 참관하는데 코로나19 사망자 유족은 1~2명뿐”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고인은 여덟인데 유족은 열두어 명뿐이었다.

화장은 1시간30분 정도 걸렸다. 유족들은 화장터 바깥 벤치에 앉아 말없이 기다렸다. 가끔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방호복을 뚫고 들려왔다. 참관하지 못한 유족은 화장터와 멀리 떨어진 관리실 옆 ‘백합대기실’에서 대기했다. 대기실 TV에서는 대구 한사랑요양병원의 코로나19 집단감염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강봉희(64) 대구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 단장이 있었다. 어떤 사망자의 가족 대신 그가 온 것이다. 사망자의 가족은 밀접접촉자이거나 확진자인 경우가 많다. 모두 격리 중이거나 치료를 받고 있으면 누군가 대신 화장장에 와야 한다. 강 단장은 작은 병원에선 시신에 손을 대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가 ‘수습 좀 해 달라’ 연락해서 우리가 하는 겁니다. 봉사단이 방호복 입고 화장까지 해서 유족 손에 쥐여 드리죠. 두려운 거 많지요. 근데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요.” 그의 봉사단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날까지 시신 9구를 수습했다.

오후 6시쯤 화장이 끝났다. 해가 지고 있었다. 유족들은 흰색 보자기로 감싼 유골함을 가슴에 품고 하나둘씩 나왔다. 유골함을 들고나오던 3명의 여성은 몇 걸음 내딛지 못하고 주저앉아 부둥켜안고 울었다. 이날 새벽 남편을 보낸 임모(60)씨는 화장하는 모습을 보는데 아무런 생각이 안 들었다고 말했다. “이래 살면 뭐 합니꺼, 밥 먹고 똥 싸면 뭐 합니꺼, 아무 희망이 없는데….”

화장 참관은 CCTV 화면으로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에서도 23일까지 코로나19 사망자 5명이 화장됐다. 화장을 목격한 이곳 관계자들에 따르면 시신이 담긴 관은 대형 리무진이나 화려한 운구차가 아닌 구급차에서 내려진다. 영정이나 위패는 없다. 보건소 직원과 승화원 관계자들이 방호복과 보호안경을 착용하고 관을 옮긴다. 관이 지나간 자리에 보건소 직원 2명이 소독약을 뿌린다.

승화원 ‘1번 화로’는 코로나19 사망자들의 전용화로가 됐다. 10개 화로 중 출입문 가장 가까이에 있어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유가족은 화장동 바깥 컨테이너 안에서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승화원이 감염 예방을 위해 최근 ‘유족 대기실’용으로 설치한 것이다. 유족들은 이 안에서 9개 화면으로 분할된 CCTV 모니터로 화장 장면을 지켜본다.

그마저 지켜보지 못한 이도 있다. 지난달 25일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숨진 35세 몽골인 남성이 이곳에서 화장됐다. 아내가 유일한 가족이었지만 확진 판정을 받아 오지 못했다. 고인은 지켜봐 주는 사람 없이 재가 됐다. 그가 담긴 유골함은 구청 관계자가 받아갔다고 한다. 쓸쓸한 마지막을 배웅하는 건 서울시설공단 직원뿐이었다.

청도 대남병원 사망자의 마지막 길

사망한 청도 대남병원 환자 9명 가운데 A씨(59)는 지난달 23일 오후 6시쯤 사망했고 오후 10시쯤 화장 처리됐다. 4시간. 그의 죽음이 정리된 시간이었다. A씨는 부모도 배우자도 자녀도 없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청도군은 사망 직후 그의 누나에게 연락해 시신 인수를 설득했다. 누나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화장을 군에 부탁했다. 그는 결국 무연고 사망 처리됐다. 청도군은 화장 후 경주의 한 봉안당에 A씨의 유골을 안치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무연고자로 알려졌던 청도 대남병원의 첫 사망자이자 국내 첫 사망자인 박모(63)씨는 고인의 형이 마지막 길을 배웅한 것으로 확인됐다. 청도군 관계자는 “첫 사망자는 대구 명복공원에서 화장을 하셨다. 형이 와서 화장·장례비용을 다 냈다고 한다”고 말했다.

1. “건장한 남편 걸어서 병원 갔는데 죽어서…”
3. “비닐백 속 엄마 시신 본 시간은 3초 였어요”

대구=방극렬 기자 고양=김유나 기자, 권중혁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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