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사건에 대한 반응

국민일보

[너섬情談] 사건에 대한 반응

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입력 2020-03-25 04:03

텍스트는 해석의 과정을 거쳐 이해되고 사건은 반응을 통해 받아들여진다. 해석과 반응의 주체는 사람이다. 텍스트는 무언가를 담고 있지만, 읽는 사람이 꺼낼 때까지 그것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 정체는 읽는 사람의 조건과 상태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흐릿하기도 하고 확실하기도 하다. 이런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딴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을 때 책의 내용은 흐릿하거나 부분만 보이거나 아예 드러나지 않는다. 책을 집어든 사람이 거기 적힌 내용을 이해할 능력이나 감수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그 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엉뚱한 말을 하는 책이 된다. 중요한 것도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재미있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 수 있다.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그 텍스트가 어떤 책인지 알리는 것 이상으로 그 텍스트를 읽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린다. 급한 사람인지 느긋한 사람인지, 경박한 사람인지 심각한 사람인지를 알린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사건은 일종의 텍스트이다. 사건에 대한 사람의 반응은 그 사건의 내용을 알리는 것 이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린다. 열매로 나무를 알게 되는 이치이다. 급한 사람과 느긋한 사람, 경박한 사람과 심각한 사람의 반응이 같을 리 없다.

자기가 겪은 어떤 일이 치욕스러워 골방으로 들어가 자기 가슴을 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광장에 서서 다른 사람의 가슴을 치는 사람도 있다. 물려받은 가난은 누군가에게 불평과 좌절의 이유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열심히 살 동력이 된다. 불법과 편법을 이용해 얻은 누군가의 부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부러워하고 모방하는 사람도 있다. 사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그 사건을 정의하는 일이고, 자기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일이다.

사재기를 하는 바람에 텅 비어 버린 미국과 유럽의 마트 진열대를 뉴스를 통해 보았다. 코로나19의 빠른 확산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이 화장지를 비롯해 생필품들을 경쟁적으로 사서 나르는 바람에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인종 혐오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바이러스 전파 속도가 워낙 빠르고 치료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꼭 그것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모두 똑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회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재기에 나선다. 사재기는 경쟁과 모방을 통해 걷잡을 수 없어진다. 멀쩡하던 사람도 가만히 있다가는 자기만 망할 것 같아 덩달아 사재기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갑자기 눈이 멀게 된 사람들이 맹목적 폭력적으로 되어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린 바 있다. 공포와 불안은 합리적 사고, 이성적 판단을 못하게 하고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과 차별, 혐오를 부추긴다. 불만스러운 상황이 생긴 요인을 자기 밖에서 찾아 조급하게 처리하려고 할 때 비이성적인 폭력이 나타난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에는 혐오와 차별 대신 배려와 헌신을 택한, 예컨대 의사의 부인과 같은 사람이 나온다.

바이러스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점에도 대한민국 국민은 사재기나 인종 혐오 같은 맹목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대책으로 일관하거나 방심하지도 않았다. 우리 사회가 꽤 건강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확인하는 기회를 우리는 이참에 가졌다. 반복된 남북 갈등과 전쟁 위험에서 생겨난 면역력 덕분이라고 단순하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실망스럽고 부끄러운 일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웃과 사회 시스템을 꽤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적어도 바이러스 감염증을 감염증 이상으로 보고 과도한 공포와 불안에 우리들 자신을 내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

이승우 (조선대 교수·문예창작학과)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