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목사고시’와 역사 과목

국민일보

[빛과 소금] ‘목사고시’와 역사 과목

전정희 뉴콘텐츠부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입력 2020-03-28 04:05

지난달 말 이스라엘에 간 성지순례단 220여명이 강제 귀국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토록 사모하는 땅으로부터의 축출은 꽤 충격적이었다. 유난히 뜨거운 한국의 신앙인들은 이스라엘 전역을 순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의 감격을 누리는 것을 생의 버킷 리스트로 꼽는다. 때문에 이스라엘 관광청은 팸투어 등을 통해 큰손 한국 고객을 예우해 왔다.

한데 그 무렵 이스라엘 정부는 한국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늘자 성지순례단을 군부대에 우선 격리하려 했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이 피켓 시위 등을 통해 매몰차게 내쳤다. 믿던 가족의 배신 같았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어라.”(창 12:2)

바로 이 성경 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부심이다. 하나님이 복된 미래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3)는 말씀을 뼛속 깊이 새기고 산다.

이 구절이 이스라엘 민족 선민사상의 뿌리다. 반대로 히틀러와 같은 반유대주의자들의 증오의 뿌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성서학자들은 이스라엘 종족 스스로가 자신들이 당한 패배와 수치를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새기라는 의미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자질 우월성으로 해석해 버린다는 것이다.

이 전승이 문서화돼 거룩한 말씀 성경으로 남았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한국의 기독교인과 교역자들은 성경 공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달달 외우다시피 한다. 가보지도 않은 곳의 지형과 환경, 생태는 물론 ‘탈무드’ 등을 읽고 유대인의 생활 습관까지 배운다. 진리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공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뿌리에 대한 이해, 즉 우리 역사를 도외시한 공부는 ‘선민 사대주의’로 흐르기 쉽다. 정작 자신의 발은 한국 땅을 딛고 있는데 머릿속은 늘 유대 광야를 떠돈다면 그와 그 그룹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분리될 수밖에 없다. 신천지가 신도들에게 순혈주의라는 종교적 신념을 주입해 공동체와의 분리를 시도하는 것을 보자. 누가 권력을 누리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일부 교회와 교역자들의 비공동체적 신앙관이 우리 공동체가 갖는 미덕을 해치고 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아니면 자기 편의대로 해석하는 데 따른 폐해로 공동체의 안위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 두 유형은 이단 종교 우두머리나 권력지향형 목회자를 낳는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일제강점기 교역자들은 이 말씀을 신사 참배를 위한 명분으로 삼았다. 독재 시대에는 독재자에게 붙어 권력 부스러기를 취하고자 했던 권력지향형 직업종교인들의 교언이었다. 패배와 수치의 역사였다. ‘권세에 복종’은 로마제국 아래서 하나님의 복음을 심기 위한 바울의 방편이었다. 이 방편이 선민적·이단적 신앙관의 논리가 되거나 우상에 바치는 용비어천가가 되곤 했다.

아브라함 족속의 하나님과의 계약,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역사는 하나님 나라에의 초대를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선 낡은 질서와의 대결이 따른다. 예수의 삶이 그랬다.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은 반듯한 믿음 생활을 통한 구원의 약속 성취 때문이다. 이웃과 함께하는 성취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이 있다. 자기가 속한 민족과 세계 공동체를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은 이웃과 함께하기 위한 역사 공부가 필요하다. ‘목사고시’ 과목에 한국사·세계사 등을 반영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해 볼 일이다. 으뜸가는(宗) 가르침(敎)이 ‘종교’라 했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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