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도 ‘이야기’는 계속돼야 한다는 믿음으로 준비”

국민일보

“코로나에도 ‘이야기’는 계속돼야 한다는 믿음으로 준비”

내달 11일 연극 ‘리어외전’ 무대 올리는 연출가 고선웅

입력 2020-03-25 04:05
다음 달 11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비튼 연극 ‘리어외전’을 선보이는 고선웅 연출가 겸 극작가. 그는 고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현구 기자

24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연습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세상을 얼게 만들었지만 연습실은 열기로 가득했다. 연출가와 배우들은 수시로 체온을 재고 손 소독제를 바르면서 연극 연습에 몰두했다. 이 연극은 다음 달 11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 오르는 ‘리어외전’. 스타 연출가 겸 극작가 고선웅(52)이 2012년 초연 후 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다.

고 연출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각자의 일을 해내는 게 중요한 시기”라며 “이야기 역시 계속돼야 한다는 믿음으로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어외전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비트는 그의 재능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딸들에게 왕국을 송두리째 뺏기고 비극적 결말을 맞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꼬았다. 그는 리어왕을 힘없이 미쳐서 죽는 인물이 아닌, 사악한 딸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문제를 바로잡는 왕으로 그렸다. 그는 “비극이 숙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자 했던 작품”이라면서 “옛날 상갓집에서 화투판을 열듯 슬픔에는 환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오래도록 싸울 수 있다”고 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하 조씨고아),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이하 옹녀) 등 그동안 그가 손댄 고전들은 새로운 해석과 재미로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받았다. 다만 리어외전 초연 때는 통통 튀는 고선웅표 연출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아쉬운 평도 더러 나왔다. 고 연출가는 “재연은 무거웠던 요소를 쳐냈다”며 “대신 웅장한 무대와 큰 스크린을 활용해 쇼를 보는 듯한 재미가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어 역에는 조씨고아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쳤던 하성광이 캐스팅됐다.

다작으로 잘 알려진 고 연출가는 자신의 창작 동력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내세웠다. 예를 들어 주체적인 여성으로 바뀐 옹녀는 가부장 사회에서 신산하게 산 옹녀에 대한 측은함에서 시작됐다. 그의 작품 속 사회적 메시지들은 바로 이런 마음가짐에서 비롯됐다. 다만 그의 사랑은 긍정적이며 미래를 이야기한다. 5.18민주화항쟁을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를 보면 웃음 속에 치유와 화해를 말하고 있다. ‘푸르른 날에’로 호평 받았던 그는 올가을 5.18민주화항쟁 40주년 기념 뮤지컬 ‘광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광주만 봐도 시민들이 죽었고, 잘못한 사람들이 있다. 잘못했으면 철저히 반성하고 사과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않는다”며 개탄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블랙리스트 같은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며 “내가 못 참는 건 ‘가짜’를 얘기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폐막식 총연출을 맡으면서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또 대규모 국가 행사를 진두지휘하면서 20여년 간 몸담았던 무대를 새롭게 바라보는 힘을 얻었다. 고 연출가는 “덕분에 시야가 넓어졌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고 좋은 이야기를 해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좋은 연극’은 무엇일까.

“좋은 연극은 단순한 것이어야 해요. 사랑 같은 보편적 정서도 담고 있어야 하죠. 잘 만든 연극을 보면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피어납니다. 그게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시대에 좋은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에요.”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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