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장요나 (19) ‘복음의 뿌리’ 살아있으면 언제든 소생… 오지 돌며 체험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장요나 (19) ‘복음의 뿌리’ 살아있으면 언제든 소생… 오지 돌며 체험

공산체제에서도 꾸준히 복음 전해온 목사님과 동행하며 소수부족들 만나 그들의 언어로 말씀과 은혜 전해

입력 2020-03-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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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요나 선교사가 1997년 베트남 꽝치성 케산읍과 라오스 국경의 몽족 마을에 도착해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도시가 복음을 전하기 더 좋을 것이라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경찰의 감시와 다른 선교사들의 견제 속에서 운신의 폭은 더 좁아졌다. 하노이와 비교해 윤택한 호찌민 사람들은 잘살아 보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해 돈 버는 일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점차 외곽으로 움직이다 중부 고원지방의 럼동성 바오록에서 A목사를 만났다. A목사는 나트랑 신학교 출신으로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도 복음 전파를 멈추지 않는 분이었다. 덕분에 화장실 들락거리듯 감옥에 갔다고 했다. 뿌리가 살아있으면 언제든 소생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A목사와 함께 오지 소수부족들을 만나며 생생하게 체험했다.

호찌민에서 바오록까지 가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당시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때라 아침에 출발해도 저녁나절이 돼야 A목사 집에 도착했다. A목사는 항상 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 식사를 빨리 마치고 다락에 숨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A목사 집에 들어가는 게 발각되면 바로 고발당했다. 친인척을 방문할 때도 허가서가 필요했고 자신의 집 외에 다른 곳에서는 잠을 잘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거주자가 아닌 사람이 집에 들어가면 보는 즉시 경찰에 알렸다. 게다가 외국인은 호텔 외에서는 잘 수 없었다.

나는 부랴부랴 저녁을 먹고 다락에 들어가 한숨 잤고 밤이 깊어지면 나왔다. 그리고 A목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럼동성 고산지대에 사는 소수부족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험했다. 산을 넘지 못한 구름이 능선 자락에 걸려 있어 희뿌옇게 시야를 막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한 적도 있고 느닷없이 원숭이가 공격해 다치기도 했다.

소수부족들은 베트남 사람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했고 고립된 장소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가난을 운명으로 살았다. 그들에게 A목사는 각 부족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셨다. A목사와 내가 도착했다는 소문이 돌면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다.

믿는 자의 수가 많아져 집에서 더 수용하지 못하게 되면 그들을 도와 몰래 처소교회를 세웠다. 소수부족 중 몇 명은 호찌민의 센터로 데려와 성경을 가르쳤다. 소수부족 마을로 가는 길이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감사하고 보람찼다.

당시 내 꼴은 말이 아니었다. 옷이 두 벌 뿐이라 어딜 가나 밤이 되면 옷을 빨기 바빴다. 밤마다 땀내 나고 후줄근한 옷을 좁은 욕실에서 웅크리고 앉아 빨 때면 내 모습이 그렇게 초라하고 옹색해 보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우울하지는 않았다. 눈물의 감사 찬양이 나왔다.

깨끗이 빤 옷을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의 날개에 걸어놓고 침대에 누워있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개운하게 씻은 맨살에 닿는 선풍기 바람은 시원했고 선풍기와 함께 도는 바지와 셔츠는 펄럭거리며 춤을 췄다. 내 마음은 부풀어 올랐고 입에서는 찬양이 흘러나왔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