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풍경화] 세상이 떠날 때 나에게 다가오는

국민일보

[편의점 풍경화] 세상이 떠날 때 나에게 다가오는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입력 2020-03-28 04:04

왜, 그런 친구 있잖은가. 치킨집 차리자 조류독감 와서 휘청거리고, 족발집 차렸더니 구제역이 몰려와 힘들다는 식으로…. 친구 중에 그런 녀석이 있다. 하는 일마다 운명의 신이 얄궂게 장난을 건다. 이번에는 코로나를 만났다. 타인의 고통을 희화화하고 싶진 않지만 하도 여러 번 그러다보니 차라리 너털웃음이 나오는 친구다. 단체 손님을 위주로 하는 식당이라 이번 사태로 여간 충격이 아닌가 보다. 주간, 야간, 주말 모두 합쳐 스무명가량 되던 직원은 여섯명으로 줄였고, 그나마 남아 있는 직원도 손님이 없으니 슬금슬금 눈치 보며 테이블만 닦고 또 닦는 중이다. 서로가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은 날들이리라.

“그러게 쌈밥집 하지 말라고 했잖아. 고용인원 많은 업태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임대료 높으면 리스크가 크다 했잖아.” 워낙 막역한 친구라 이런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긴 했지만, 위로가 필요한 시절에 훈계를 늘어놓을 만큼 나도 영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다. 예고 없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친구는 “웬일이야?” 하면서 눈이 동그래졌고, 나는 말없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텅 빈 홀을 두리번거렸다. “우리 편의점도 한산하고 해서, 여기 일자리 없나 알아보려고.” 농을 던졌다. 매출은 반토막이 아니라 바닥으로 추락했고, 그나마 직원들이 인원 감축에 선뜻 동의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분들은 또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을지 걱정이라며 긴 한숨을 내쉰다.

세상을 집어삼킬 듯 살아가던 녀석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꼴이라니….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야 한다고! 다짜고짜 주방에 들어가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하고, 쏴아― 물을 뿌렸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있던 친구도 이내 팔을 걷고 고무장갑을 찾는다. 싱크대를 박박 문지르고, 그릇과 접시를 모두 꺼내 씻고, 가스레인지, 건조대, 조리대, 세척기 여기저기 구석구석 청소하고, 잔반통마저 윤이 나게 번들번들 닦았다. “접시 깨면 오늘 일당 안 준다.” 친구는 그제야 원래의 친구로 되돌아왔다. “일당은 됐고, 저녁밥이나 얻어먹고 가야겠다.”

한바탕 그렇게 청소를 마치고 나서도 손님은 오지 않았다. 조명은 왜 그리 환장하게 밝던지. 한구석 테이블에 제육볶음 한 접시를 놓고 마주 앉았다. TV 뉴스 채널에 등장하는 앵커는 바쁜 목소리로 세계적인 위기 상황을 전하고, 우리는 멍하니 화면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리모컨 붉은 버튼을 질끈 눌러버렸다. 한동안 말없이 소주잔만 쨍강거렸다. “가볼게.” “그래.” “걱정마. 잘 될 거야.” “알아.” “제수씨랑 애기들 생각하면서 힘내.” “알았다니까, 인마. 너나 잘해.” “오살할 놈. 입만 살아 갖고.”

세상이 모두 내 곁을 떠날 때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친구’라고 했던가. 식당을 나설 때 계산대 위에 슬쩍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뭔 돈이냐?” “얼마 안 돼. 집에 갈 때 뭐라도 하나 사 들고 가.” 조용히 전화가 끊겼다. 썩을 놈. 울었을 것이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