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구 칼럼] 조국 수사가 쿠데타라는 주장

국민일보

[김의구 칼럼] 조국 수사가 쿠데타라는 주장

입력 2020-03-25 04:01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권력비리에 엄정 대처하라는 대통령 당부에 충실한 것
총선 앞두고 득표를 노린 주장이라 해도 상식과 논리가 허용하는 한계선 지켜야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많은 당부의 말을 했다. 지난해 7월 25일 노영민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참모진이 배석한 자리에서였다. “반칙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정의가 바로 서는,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게 검찰이 갖는 또 하나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대통령은 강조했다. 마지막 당부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중한 대응이었다.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국민이 체감하게 되고, 권력형 부패도 막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은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엄정하게 처리해서 국민의 희망을 받았는데 그런 자세를 앞으로도 끝까지 지켜 달라”며 윤 총장의 소신과 검사로서 걸어온 길에 대한 신뢰를 표시하기도 했다.

박근혜정부 첫해인 2013년 4월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된 윤 총장은 상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과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가 수사팀에서 배제된 뒤 이듬해 1월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2016년 12월 최순실 게이트 특검팀 수사팀장으로 돌아온 그를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고 2년여 만에 다시 검찰 최고위직에 올린 것은 문 대통령이었다.

잘 알려진 지난 일들을 새삼 복기한 것은 윤 총장과 그가 중용한 검찰 간부들을 쿠데타 세력이라고 한 주장이 제기된 때문이다. 여당의 비례대표 정당을 자처하는 열린민주당 후보로 나선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22일 ‘검찰 쿠데타 세력’이라며 윤 총장 등 검사 14명의 명단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조국 사태를 두고 “검찰의 쿠데타”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가족의 여러 혐의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을 쿠데타라 부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다. 오히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여겨 달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보는 게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다. 언론을 통해 여러 불공정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공직 후보자에 대해 권력 실세라거나 현 정권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수사를 주저하는 것이야말로 임명권자를 거슬러 중립성을 위반하는 정치 검찰의 행태다.

4·19세대와 386세대 등이 헌신했던 민주화운동의 주적은 쿠데타 세력이었다. 그에 맞서 헌정 질서를 정상화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게 운동의 본질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반민주 세력에 충성하는 검찰 조직을 향해 정치 중립을 외친 것도 민주화운동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아닌 국민의 눈높이에서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것을 쿠데타라고 모는 건 언어도단에 가깝다.

조 전 장관 문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두 번이나 사과했다. 조 전 장관이 자진사퇴한 지난해 10월 14일 “우리 사회는 큰 진통을 겪었습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서 국민께 매우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라고 밝혔다. 한 달가량 뒤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에게 갈등을 주고 분열을 만들었습니다. 정말 송구스럽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조 전 장관의 사퇴와 대통령의 사과 이후 여권 지지율은 반등했고 이를 기반으로 검찰 개혁법안을 처리했다.

이런 결과로 귀결된 검찰 수사를 쿠데타라고 주장한다면 대통령의 사과는 쿠데타를 묵인하거나 사후 용인한 것으로 봐야 하는가. 산 권력에 대한 수사를 쿠데타라고 한다면 윤 총장이 전 정부 때 정권의 반대를 일축하고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밀어붙인 것도 쿠데타요, 이를 지지했던 행위는 쿠데타 동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 정권 때의 일은 쿠데타가 아니고 지금은 맞는다면 이중잣대가 아닐 수 없다.

문제의 발언은 총선 득표를 노리고 극단적인 어법을 쓴 것일 터이다. 노이즈 마케팅일 수 있고, 특정 세력의 표를 집중시키기 위한 정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선거판이라 하더라도 상식과 논리가 허용하는 한계를 지켜야 한다. 그런 테두리 내에서 유권자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게 정도다. 정치가 이를 넘어서서 일방적인 주장을 남발하면 정치 혐오를 부추길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입지를 좁히게 된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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