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우리는 여전히 가난해서 죽는다

국민일보

[창] 우리는 여전히 가난해서 죽는다

박민지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입력 2020-03-28 04:04

한 상인은 “그야말로 아사 직전 상태”라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필요성을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래도 먹고 살게는 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울부짖음으로 들렸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았을 이들에게는 피 마르는 하루하루가 흐르고 있다.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장소가 필요하고,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라는 외출 자제를 독려하고 타인과의 접촉을 멀리하라고 당부했다.

그나마 수요가 있는 배송 아르바이트를 선택한 청년 윤모씨는 “월세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졌다”며 “계속 아팠지만 물량을 맞추기 위해 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숨진 쿠팡맨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필연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량을 맞추지 못하면 벌점을 받을 테고, 결국엔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고인은 살려다가 도리어 죽었다는 의미다.

소득원이 끊긴 이들에게 무서운 건 바이러스가 아니라 죽음이다. 최소한의 고정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배불리 음식을 먹을 것이란 상상은 도무지 하기 어렵다.

필요한 건 돈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긴급구호 생계비 지급을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삶의 윤택함이 아니다.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가게 자리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고, 가족과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난의 중심에 서 있는 대구시는 저소득층에 대한 긴급생계자금을 총선 무렵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재난구조의 일차적 관건은 골든타임인데, 임계점을 넘어서기 전 구조를 완료하면 좋겠다.

방법은 현금이다. 경기도는 재난기본소득으로 모든 도민에게 10만원씩 지급할 계획이다. 주민(1326만5377명) 모두에게 지급하는 것은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소액이고 일회적이지만 기본소득 논의의 단초가 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 정책으로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재난 상황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뼈아프게 절감하는 지금, 재난기본소득을 넘어온 국민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 좋겠다. 기본소득이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유부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고 무조건적이고 개별적이며 정기적인 현금을 지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혁명으로 부(富)의 과도한 집중과 대량실업이 우려되는 저성장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기본소득은 비단 복지정책을 넘어 포용경제의 핵심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시선도 여기 꽂혔다. 미국 호주 독일을 중심으로 얼마 전 국제기본소득행진이 열렸고, 미국 민주당 예비 대선 후보였던 앤드루 양은 18세 이상 국민에게 매달 1000달러(약 120만원)를 기본소득으로 주겠다고 공약해 큰 지지를 얻었었다.

혹자는 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돈을 줘야 하는지 묻는다. 기본소득당은 “임금노동이 아니어도 모든 국민은 사회가 가진 공유부에 대한 배당을 받아야 한다”며 “토지는 사회의 것이지만 부동산으로 얻어지는 부는 소수에게만 돌아간다. 빅데이터를 가공하는 기업의 이윤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는 국민은 배당받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재정건전성 문제를 지적하지만 기본소득은 뜬구름 잡는 주장이 아니다. 민간 독립 연구소인 ‘LAB2050’은 내년부터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 월 30만원씩을 지급하는 방안을 최근 발표했다. 소득공제, 세액공제 등 각종 세금 감면 제도를 폐지해 소득과 과세표준을 일치시키면서 기존 세금 제도의 누진성을 강화하면 재원 마련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의 복지제도는 사람을 선별한다. 얼마나 가난한지, 왜 가난한지, 돈을 안 버는지 못 버는지를 증명한다.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기반으로서의 현금 지원을 바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점이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던 북한이탈주민 40대 어머니와 다섯 살배기 아들이 지난해 8월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은 바짝 말라 있었고 냉장고에는 고춧가루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공과금을 내지 못 해 물도 나오지 않는 집에서 며칠을 굶다가 죽었을 엄마와 아들이 여전히 이곳에 있다. 진정으로 가난했지만 손길이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였다. 만약 모두에게 돈을 줬어도 죽었을까.

박민지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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