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에서 자유로우려면 의자에 앉아 있는 삶 벗어나라

국민일보

질병에서 자유로우려면 의자에 앉아 있는 삶 벗어나라

[책과 길] 의자의 배신/바이바 크레건리드 지음, 고현석 옮김/아르테, 492쪽, 2만8000원

입력 2020-03-26 19:40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했던 유명한 비유를 떠올려보자. 양팔을 벌려 왼손 손끝이 지구의 시작이고, 오른손 손끝이 현재라면 현대 문명은 오른손 중지 손톱 언저리에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인간 대다수가 의자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낸 건 언제부터일까. 정답은 19세기다.

그전까지 많은 사람은 걷거나 뛰거나 서서 일을 했다. 앉아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의자의 위상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양팔의 길이가 지구의 역사라면, 줄칼로 오른손 손톱을 문질러버리는 것만으로도 인류사 속 의자의 위상은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영국 학자인 바이바 크레건리드(51)가 발표한 ‘의자의 배신’은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현대인이 겪는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일러주는 책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문제는 인간이 걷기를 멈추었을 때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5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인류사를 일별하면서 인간 진화의 궤적을 그려낸다. 현대 문명에서 편하고 빨라서 “좋게 느껴지는 것”이 인간에게 “진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온갖 사례를 동원해 증명해내는데 인상적인 부분이 수두룩하다. 이른바 사무 노동이 인체 면역 체계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도 들려준다. “의자에 갇힌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현대인은 각종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의학 역사학 사회학 등 갖가지 학문을 넘나들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비로소 ‘운동’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는 주장도 주목할 만하다. 해제를 쓴 신경인류학자 박한선의 글도 인상적이다. “책을 덮으며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진화와 문명은 결국 질병을 향한 눈먼 달음박질이었을까. 인류사 전체가 질병으로 점철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학적 혁신을 통해 질병에서 점점 자유로워졌고, 위생과 영양의 개선을 통해 오래 살게 되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진화의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인류 진화의 산물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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